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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발걸음을 멈춰 세운 색채, 마음을 움직이는 빛…Kiaf SEOUL 2026에서 만난 나비킴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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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작품이 한 공간에서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트페어에서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작품은 불과 몇 초 안에 지나가는 시선을 붙잡아야 하고, 그다음에는 관람객을 화면 앞에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Kiaf SEOUL 2026, A홀 조선화랑 A66 부스에서 만난 나비킴(NAVIKIM·김현정)의 작품은 그 두 가지를 모두 보여줬다.

현현(顯現) Vital Genesis_2026_Acrylic on canvas_252x140cm 

부스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부터 시선을 끌어당긴 것은 대형 작품 〈현현(顯現) — Vital Genesis〉였다. 252×140cm의 화면 위에 펼쳐진 선명한 청색과 붉은색, 분홍과 초록, 노랑의 흐름은 주변의 작품들 사이에서도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이 작품은 많은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작품 앞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였고,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거나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남기는 모습이 이어졌다. 빠르게 이동하는 아트페어의 관람 흐름 속에서 사람들이 작품 앞에 머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아트페어 현장에서 작품 앞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나비킴의 작품 앞에서는 조금 다른 장면이 이어졌다. 밝고 강렬한 색채의 작품을 바라보다 눈물을 보이는 관람객들이 여러 차례 나타난 것이다. 작가의 설명을 듣기 전부터 말없이 작품을 바라보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멀리서 본 〈Vital Genesis〉가 폭발하는 듯한 색채와 에너지로 다가온다면, 가까이에서는 수개월에 걸쳐 그리고 덮는 과정을 반복하며 만들어낸 흔적이 읽힌다. 한 번의 붓질로 만들어진 화면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과 감정이 쌓이고 다시 덮인 결과다. 작품 제목에 사용된 ‘현현(顯現)’은 보이지 않던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현현(顯現) Vital Genesis>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안에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랜 어둠을 뚫고 응축된 생명력이 마침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강렬한 색채는 시각적 화려함 머물지 않는다. 수개월에 걸쳐 그리고 덮으며 겹겹이 쌓아 올린 화면에는 오랜 시간을 통과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생명력이 담겨 있다.

 

나비킴은 지난 20년 동안 나비와 빛을 중심으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생명성을 탐구해왔다. 그가 지속해서 질문해온 것은 눈에 보이는 빛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보석 같은 빛을 발견하고, 그 빛으로 삶의 생명성을 일깨우는 예술을 지향해왔다.

 

그 과정에서 작업의 재료도 변화했다. 안료를 중심으로 시작한 색채 연구는 Plexiglas와 유리, LED 등 실제 빛을 활용하는 영역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이번 신작에서는 다시 회화의 화면으로 돌아와 안료의 색과 빛의 관계를 한층 밀도 있게 풀어냈다.

 

〈Vital Genesis〉 옆에 전시된 작품들에서는 또 다른 분위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분홍과 하늘색, 연보라와 초록빛이 화면 전체에 겹겹이 스며든 작품들은 〈Vital Genesis〉의 강렬한 에너지와는 다른 속도로 관람객에게 다가온다. 거칠고 미세한 표면의 질감 위에 여러 색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함께 머무른다.

 

작가는 이 연작을 통해 생명의 탄생뿐 아니라 생명이 시간을 통과하며 변화하고 깊어지는 과정까지 이야기한다.

빛결 Vital Becoming_2026_Acrylic on canvas_60x90cm each (triptych)

〈Vital Genesis〉가 오랜 어둠을 뚫고 생명력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라면, 〈빛결 — Vital Becoming〉은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자신만의 빛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전시장에서 두 작업을 함께 바라보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강렬함’과 ‘잔잔함’이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탄생의 순간에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생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나비킴의 이번 작품들은 그 두 시간을 동시에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화면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나비 역시 중요한 상징이다.

 

나비는 오랫동안 변화와 탄생을 상징해왔다. 애벌레가 번데기의 시간을 지나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은 나비킴이 말하는 ‘현현’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특히 대형 작품의 아래쪽에 자리한 나비는 화려한 색의 흐름 속에서 태어나 어디론가 이동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화면 오른쪽 아래의 밝은 나비는 거대한 색채의 소용돌이를 지나 밖으로 빠져나오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화면에 표현된 것은 나비의 형상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전시 전경

Kiaf SEOUL과 같은 대형 아트페어에서는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수많은 부스와 작품, 사람들 사이에서 관람객들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런 환경에서 작품 앞에 사람을 멈춰 세우는 것은 색채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은 결국 그 안에 담긴 이야기다.

 

나비킴의 작품 역시 멀리서는 강렬한 색채가 사람을 불러 세웠지만, 가까이에서는 화면에 축적된 시간과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생명에 대한 질문이 관람객을 머물게 했다.

 

17년에 걸친 연구 끝에 2026년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나비킴은 자신의 작업을 하나의 작품론으로 정리했다. 그는 그 시간을 두고 “작가로서 제 자신을 발견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32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에 출강하고 있는 작가에게 이번 Kiaf SEOUL 2026은 또 하나의 완성이라기보다 지금까지 이어온 질문의 현재 지점에 가까워 보였다.

지나가던 관람객이 작품 앞에 멈춰 한참 바라보다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린 관람객의 마음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나비킴의 작품 앞에서 나타난 뜻밖의 눈물은, 강렬한 색채 너머의 무엇인가가 관람객의 내면과 만났음을 짐작하게 한다.

 

오랜 어둠을 지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생명력.
〈현현(顯現) — Vital Genesis〉는 그 순간을 빛과 색채로 보여준다.

 

보이지 않던 마음의 빛이 색채를 통해 모습을 얻고, 그 빛은 다시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다. Kiaf SEOUL 2026의 수많은 작품 사이에서 나비킴의 색채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이유는, 어쩌면 그 안에서 누군가 자신의 빛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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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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