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72] 김강호의 “도다리 사랑”
도다리 사랑
김강호
뒤늦은 꽃샘바람에 불면증을 앓던 너
퉁퉁 부운 눈두덩이 이별 쪽으로 쏠렸고
사랑이 떠난 날부터 몸져눕고 있었다
상처를 토해내는 갯돌밭 노을 무렵
아픔을 다 읽은 듯 가마우치 돌아가고
파도가 혼절한 너를 깨워주고 있었다
슬픔의 긴 꼬리가 수평선을 넘는 밤
네가 남긴 눈물방울 똘망한 별로 떠서
무너진 가슴 벼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이별 이후 한 존재가 겪는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바다의 생태와 풍경 속에 겹쳐 놓은 시조다. 제목에 등장하는 ‘도다리’는 단순한 어종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은 존재다. 봄철에 살이 오르는 도다리의 생태를 떠올리면, 생명력이 가장 충만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불면과 병을 앓는 역설적 표현이다. 나는 그 역설을 통해 사랑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근원적으로 흔드는가를 말하고자 했다.
첫 수에서 ‘뒤늦은 꽃샘바람’은 계절의 변덕을 넘어 예기치 못한 이별의 기운이다. 꽃이 피어야 할 시기에 찾아온 찬바람처럼, 사랑 또한 가장 따뜻해야 할 순간에 차갑게 식어 버릴 수 있다. ‘퉁퉁 부은 눈두덩이’는 밤새 울어 지친 모습이면서 동시에 도다리의 한쪽으로 몰린 눈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즉, 직접 ‘도다리 같다’고 말하지 않고 그 특징을 인간의 표정 속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대상과 화자의 경계를 흐리게 했다. 특히 ‘이별 쪽으로 쏠렸고’라는 구절에는 이별한 사람에게 향해 있다는 뜻과 함께, 삶 전체의 무게중심이 상실의 방향으로 기울어졌다는 의미다.
둘째 수에서는 상처의 내면을 바다 풍경에 투사하였다. ‘상처를 토해내는 갯돌밭’은 파도에 뒤집히며 부딪히는 돌들의 소리를 울음처럼 들은 데서 나온 표현이다. 돌은 본래 말을 하지 못하지만, 여기서는 상처를 ‘토해내는’ 존재로 표현했다. 이는 화자가 직접 울부짖지 않고도 주변 자연이 대신 고통을 증언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아픔을 다 읽은 듯 가마우치 돌아가고’ 새는 단순히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읽고 물러서는 존재가 된다. 그 순간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상처를 공감하는 또 하나의 생명체다.
‘파도가 혼절한 너를 깨워주고 있었다’는 구절 역시 회복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오며 쓰러진 존재를 흔들어 깨우는 손길이 된다. 여기서 ‘혼절’은 실제 육체의 상태이면서 동시에 사랑을 잃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정신적 마비를 뜻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파도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라고 등을 두드리는 운명의 힘이라고 보았다.
셋째 수에서는 슬픔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긴 슬픔 지느러미가 수평선을 넘는 밤’에서 지느러미는 도다리의 몸 일부이자 끝없이 이어지는 슬픔의 형상이다. 슬픔이 바다를 헤엄쳐 수평선을 넘어간다는 표현은 감정의 크기가 개인의 내면을 넘어 세계 전체로 번져 가는 모습이다. 이어지는 ‘네가 남긴 눈물방울 똘망한 별로 떠서’에서는 눈물을 별로 변모시켰다. 이는 상실의 흔적이 절망으로만 남지 않고 새로운 빛으로의 전환이다. 눈물은 바다에 흩어져 사라지는 물방울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길을 비추는 별이 된다.
마지막 종장 ‘무너진 가슴 벼랑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이 작품의 핵심 의도를 담았다. 벼랑은 사랑이 무너뜨린 마음의 절벽이며, 동시에 다시 일어서야 할 삶의 경계선이다. 별이 벼랑을 ‘일으킨다’는 표현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바로 그 불가능성을 통해 사랑의 기억이 인간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정신적 힘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결국 「도다리 사랑」은 한 마리 도다리의 이야기를 빌려 인간의 사랑과 상실, 그리고 회복의 과정을 노래하고자 했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