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안이 만난 작가] “우리는 사라지는 것 곁에 조용히 앉는다” 프랑스 사진가 잔느 듀브레송
프랑스 사진가 잔느 듀브레송과 한국 사진가가 나눈 여름의 긴 대화
글 | 류안 (시인·사진가, 코리아아트뉴스 발행인)
장소 | 케이리즈갤러리 삼성동 《HASARD》 전시장
일시 | 2025년 7월 10일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한 오후 , 서울 삼성동 케이리즈갤러리. 잔잔하게 내려앉은 빛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 마주 앉았다. 프랑스에서 온 젊은 작가, 잔느 듀브레송. 그녀의 첫 한국 개인전 《HASARD》가 막 개막했고, 나는 오래된 친구처럼, 혹은 지나가는 구름을 따라 걷듯 자연스럽게 그녀 곁에 앉았다.

테이블에는 조용한 커피 한 잔과, 그녀가 늘 들고 다닌다는 노트가 있었다. 열고 닫히는 문들 사이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전시장을 스쳐 지나갔고, 우리는 말 대신 이미지에서 시작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HASARD — 우연의 전시
“우연"이라는 단어를 왜 선택하셨나요?” 제가 첫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미소 지으며 답했습니다.

“저에게 우연은 하나의 철학이에요. 어떤 계획이나 통제 없이, 자연스럽게 일이 벌어지고 우리가 그것을 맞이하게 되는 방식이죠. 무책임하게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떠다니는 주의력을 유지하고, 열린 마음으로 맞이하는 태도랄까요. 제 작업에서도 늘 그런 자세를 지키려 해요. 매체나 분야의 경계를 오가며 작업하고, 때론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 불안정함을 창작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늘 깊은 의미를 찾고자 해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장소나 벽, 그곳에 남겨진 사물들 속에 새겨진 의미요.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니까요… 사진을 찍는다는 건, 가끔은 기억을 붙잡으려는 간절한 행위예요.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들, 잊힌 공동체의 흔적에 공명하고자 하는 시도죠. 그 의미는 생각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걷고, 멈추고, 바라보는 몸의 움직임 속에서 떠오르죠. 제게 먼저 말을 거는 건 늘 ‘장소’들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오랫동안 사진을 하며 내가 놓쳤던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늘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녀는 의미 이전의 느낌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예컨대, 재개발 지역을 찍을 때 나는 ‘기록의 윤리’에 대해 고민했고, 그녀는 ‘함께 머무는 온기’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작업은 손으로, 몸으로 하는 일
우리는 함께 작품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폴라로이드 위에 젤라틴이 녹아 흐른 사진 앞에서 그녀는 말했다. “이건 제가 에멀젼 리프트 작업한 시리즈예요. 실패한 사진도 있고, 의도와 다른 것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좋아요. 어떤 감정은 통제할 수 없을 때 오히려 더 생생해지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전에 내 사진을 원목 위에 프린트한 적이 있어요. 그 위에 나전 칠기 작가와 함께 진주 조각을 얹었죠. 손으로 만드는 행위와 이미지가 겹쳤을 때, 사진은 훨씬 더 ‘기억’이 되더군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아, 저도 레진 안에 사진을 넣는 작업을 해봤어요. 만지고 싶은 이미지라는 말, 너무 공감돼요. 기억은 눈보다 손끝에 남는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보광동, 사라짐의 언덕
우리는 전시장 안쪽, 보광동 연작을 함께 보았다.. 무너진 담벼락, 휘어진 창틀, 이불이 없는 침대. 나는 한 장의 사진 앞에 멈췄고, 그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보광동이군요.” 내가 말했다. “나도 이와 비슷한 곳에서 많은 사진을 담은 적이 많았죠, 한국인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은 곳에 관심을 가진 것이 새삼 놀랍네요. 그곳이 사라지기 전, 하루 종일 계단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었죠. 그땐 내가 뭘 지키고 있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이죠.”
잔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랬어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왜 하필 거길 찍었냐’고 묻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곳에 남은 온기— 열리지 않는 창, 오래된 벽지, 텅 빈 싱크대 위의 바람 같은 걸 느끼고 싶었어요. 그 자리에 누구도 없었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말하고 있었어요.”
나는 한참을 말없이 그 사진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이미지에는 문장이 없었다. 대신 오래된 집에서 풍겼을 그 습기와, 벽에 남은 손자국이, 무엇보다 오랫동안 말을 걸고 있었다.
기술과 손 사이의 감각
잠시 휴식을 취하며 우리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녀는 노트북을 열었고, AI 아티스트 ‘데브로타’와 협업한 영상 작업을 보여줬다.
영상 안에서 한 댄서가 천천히 몸을 굽혔다가, 다시 고요히 일어섰다. 움직이지만 멈추어 있는 이미지. 숨이 쉬어지는 사진.
나는 말했다. “놀랍네요. 기술을 이렇게 감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흔히 AI라 하면 자동화, 효율화 같은 말부터 떠오르는데, 여기선 그 반대예요. 오히려 뭉툭하고, 느리고, 조용하게 움직여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사실 기술을 두려워했어요. 손의 흔적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서 말이죠. 하지만 AI를 꼭 정밀하거나 빠르게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작업에서는, 오히려 ‘멈춘 것을 천천히 흔들게’ 하는 용도로 쓰였어요. 정지된 사진 안에 숨을 불어넣는 듯한... 그런 감각이었어요.”
“감도를 조율하는 사람이 결국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말했다. “기술은 손을 댈 수 있는 도구지만, 방향을 선택하는 건 결국 감각이니까요.”
그녀는 그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감도와 망설임—그걸 품을 수 있는 기술이라면, 저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

경계를 넘는 사람들, 직선보다 원을 그리는 사람들
잔느는 다시 노트를 펼쳤다. 낡은 종이에 연필로 적힌 단어들이 빼곡했다. 프랑스어 문장, 작은 드로잉, 컬러코드, 날씨의 메모.
“제 노트예요. 그냥... 걷다가, 생각이 날 때마다 적어요. 말이 되지 않아도, 쌓아놓으면 나중에 무언가로 엮이더라고요.”
나는 그녀의 노트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도 그래요. 오래전부터 매일 한 문장씩 씁니다. 사진도 찍지만, 말이 이미지보다 앞서 떠오를 때가 있어요. 누군가는 ‘그게 시입니까?’라고 묻지만, 저는 그냥 감각의 스크랩이라 말하죠.”
잔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가 언어로 딱 떨어질 때보다, 말이 되기 전의 상태—그 전율 같은 게 좋아요. 저는 어떤 사진보다 제 드로잉에서 저를 더 발견할 때도 있어요. 이미지를 찍기 전, 손으로 길을 더듬듯 그려보면 마음이 따라와요.”
나는 작은 메모장을 꺼내, 그날 적어두었던 메모를 읽어줬다.
흐름을 막으려다 고인다. 고인 것을 버티려다 잊힌다. 잊는 대신 남기려다… 사랑하게 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로의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는, 늘 조금 조용하다. 말을 쉬는 시간이, 느슨한 말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저는 작가라고 불리기보다, 감각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잔느에게 물었다. “당신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말할 수 있을까요? 사진가, 모션 아티스트, 설치미술가… 당신은 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이거든요.”
그녀는 한참 고민한 뒤 말했다. “이제는 그 질문이 불편하지 않아요. 예전엔 너무 싫었어요. ‘당신은 어떤 작가죠?’라는 질문이요.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나를 부정해야 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흐트러진 자리에 저만의 중심이 있다는 걸 알아요. 저는 기술보다 감각, 매체보다 태도를 따르는 사람이고 싶어요.”
나는 그 말에 깊이 동의했다. “나 역시 시를 쓸 땐 사진가라는 걸 잊고, 사진을 찍을 땐 시인이라는 걸 잊어요. 작가는 어쩌면 잊으면서 존재하는 사람일지도요.”
젊은 작가에게, 한 마디 건네는 말 : 흔들려도 괜찮아요
잠시 뒤, 나는 마지막 질문을 꺼냈다.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을, 예술가의 시작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 당신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잔느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흔들려도 괜찮아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그 감정, 끊임없이 반복되는 불확실성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와요. 하지만 바로 그 불안정함이야말로 당신만의 언어와 감수성을 형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어요. 누구도 명확한 구조나 잘 정의된 정체성을 갖고 시작하진 않아요. 저 또한 사진, 드로잉, 영상, 설치 작업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죠. 하지만 매번 계획 없이 살짝 열린 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서 조금씩 더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여러 분야와 의심 사이를 떠돌며 자기만의 중심을 찾는 것 — 그게 바로 진정한 창작의 본질 아닐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나 역시 그날, 내게 꼭 필요했던 말이었다.
대화를 마치며 : 예술은 '기록' 보다는 '동행'에 가깝다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녀는 노트를 덮었고, 나는 커피잔을 비웠다. 말은 그쳤지만, 많은 것이 아직 테이블 위에 남아 있었다. 손의 기억, 창밖의 습도, 누군가의 질문.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이 대화는 누군가와 함께 사라짐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예술이라는 것은 어쩌면, ‘기록’보다는 ‘동행’에 가까운 것 아닐까.

전시 정보
전시명: HASARD – 잔느 듀브레송 개인전
기간: 2025년 6월 19일 ~ 7월 19일
장소: 케이리즈갤러리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작가 소개: 잔느 듀브레송(Jeanne Dubresson)은 프랑스 파리 출신의 사진가이자 비주얼 아티스트. 고블랭 예술학교에서 사진 및 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복합매체 기반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기억, 사라짐, 물성, 시간과 우연의 감각을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감각을 통해 탐구한다. 현재는 한국 콘텐츠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KFTV'를 운영하는 등, 예술을 통해 양국 문화 교류에 기여하고 있다.
《HASARD》라는 이 전시는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곁에 조용히 앉아주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날, 그 조용한 자리에서 정말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고 믿는다.

[편집자주 : 이번 대담을 위해 작가섭외, 장소제공, 사진 촬영 등 협조해준 케이리즈갤러리에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