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22] 이원종의 "어머니"
어머니
이원종
어머니,
당신은 드넓은 녹차 밭의 어린잎입니다.
바람이 불어 새잎들마저 흩날리면
제 몸은 푸르른 물로 차올라
어느덧 그리운 바다가 됩니다.
이제는
저를 스치고,
당신은 어디론가 먼길을 가시는 길이신가요?
어머니,
당신은 자그마한 개천의 징검다리입니다.
물이 차올라 건너기가 머뭇거려질 때
당신은 기꺼이 등을 내주셨지요?
이제는
제가 그 등을 내주어야 할 때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장독 위에 소복이 쌓인 함박눈입니다.
시린 손으로 쌓인 눈을 치우시곤
잘 익은 김치 몇 포기를 길어 올리셨지요.
그 따뜻한 함박눈 아래
김치는 맛깔나게 익어갔지요.
이제는
그 누군가를 갈무리해 두고 당신은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지셨나요?
어머니,
당신은 신작로의 길가에 피어난 풀꽃 한 송이입니다.
누군가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는가 하고
물으면 저는 선뜻 대답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그저 이름 없는 한 송이 풀꽃일 뿐입니다.
이제는
그 서러운 무명의 옷을 벗으시고
가벼이 어느 하늘로 날아올라 가셨나요?
어머니,
당신은 투명하게 고요한 밤의 불면입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연탄불을 가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곤 하였지요.
어린 마음에 어머니는 언제 주무시나 궁금했는데
이제는
밤하늘의 별빛 자리 가운데
모자란 잠을 주무시고 계시는군요.
그 달그락거리는 밤의 소음이 사무치게 그리워서
저 가끔은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합니다.
—『너무나도 소중하지만 하찮게 느껴지는』(세상의 아침, 2022)

[해설]
먼 나라로 가신 어머니 생각
이 시를 지금 막 읽은 분 가운데 절반 정도는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절반 정도는 살아 계시지 않을까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 여러분들은 어머니에 대해 어떤 일들이 기억납니까? 이원종 시인은 하얗게 쌓인 눈을 치우고 장독을 열어 김치를 몇 포기 길어 올리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연탄불을 가는 어머니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었나 봅니다. 요즘엔 30대도 연탄이 뭔지 모를 텐데, 예전에는 연탄을 꺼트리지 않는 것이 그 집안의 중대사였습니다.
어머니는 잠도 없는지 새벽에 일어나 연탄불을 갈고, 아침밥을 준비하고, 도시락을 쌌습니다. “이제는/ 밤하늘의 별빛 자리 가운데/ 모자란 잠을 주무시고 계시는군요.”란 대목은 부지런했던 내 어머니, 하늘나라에 가서나 휴식을 취하고 계시겠네, 생각해서 쓴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참으로 많은 어머니가 희생과 헌신으로 집안을 지키고 자식들을 가르쳤습니다. ‘어머니’란 낱말 자체가 숭고하고 거룩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늘 뒷전이었습니다. 젊어서는 남편 뒤에 서 있었고, 중년과 노년일 때는 자식들 뒤에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제 어머니는 10여 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30여 년 동안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점을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식구들이 먹을 아침밥을 차려놓고 가게로 갔습니다. 절반은 문구류, 절반은 잡화류여서 밤 10시는 되어서야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연탄 갈기는 제 몫이었습니다. 간혹 실기하여 번개탄이라는 것을 피워 연탄을 살리곤 했었지요.
세상의 자식들은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비로소 어머니의 자기희생과 사랑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원종 시인도 어머니가 멀리 가시고 세월이 한참 흐르자 겨우 심정적으로나마 효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머니가 계시면 오늘 전화 한 번 드리면 어떨까요? 어머니, 오늘 많이 추운데 웬만하면 외출하지 마세요. 꼭 나갈 일이 있으면 길이 빙판인 곳이 많으니 각별히 조심하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평소에 안 하던 이 한마디를 하면 어머니는 감격해서 어쩔 줄 모를 것입니다.
[이원종 시인]
여의도고등학교를 나왔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1980년에 입학해서 다녔다. 2001년에 첫 시집 『선』을 내고 21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너무나도 소중하지만 하찮게 느껴지는』을 냈다. 광고계에서 30년 넘게 일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