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30] 윤영범의 "생선가게 일기", 정국희의 "등을 내준다는 것"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두 이민자의 외로움과 그리움

생선가게 일기 

윤영범

 

얼음 속, 줄지어 누워

서로의 상처를 덮어주고 있었다

넘은 파도 수만큼 돋아난

비늘을 곱게 두르고

어느 찬란한 바닷속에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방황을 했을 그 심해의 수온을

기억하면서

 

―비늘을 벗기고 배 따 주세요

 

어릴 적 짙은 들쑥 내음 같은

비린내 나는 나무 도마 위에서

비늘을 털기 시작했다

 

갑자기 빛나는 추억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살며 주워온 부끄러운 껍질들도 떨어지고

말갛게 드러나는 알몸

배를 가르면 쏟아져 나올까

숨겨두었던 사랑이며 그리움들이

 

문득 소금기로 삐걱거리는 가게 문으로

파도가 밀려 들어와, 생선들은

얼음을 털고 일어나

작은 바다 하나를 만들고

난 새롭게 돋아날

푸른 비늘을 갖기 위해

하루 종일 파도를 넘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생선가게 일기 _ 윤영범 시인 [ 이미지:류우강 기자]

등을 내준다는 것

 

정국희

 

어부바 하고 등 내밀면

좋아라 업히는 아이를 생각하다가

단풍잎 같은 세 살 이쁜 손 어깨 위에 얹히면

몸에서 풍금 소리 퍼지는 걸 생각하다가

다른 말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어부바라는 뜻이

어와둥둥 내 사랑일 거라고 결론 내린다

 

업어준다는 것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정을 베푼다는 뜻이다

대신 발이 되어

걸어준다는 뜻이다

 

몸을 맡기는 것

어디를 가든 믿고

함께 간다는 것이다

 

등에 가슴을 대고

같은 쪽을 보며 한 몸으로 간다는 것

살과 살을 맞대어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는 것

 

애틋한 정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어와둥둥 내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다

등을 내준다는 것 _ 정국희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두 이민자의 외로움과 그리움
 

   오늘은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 사흘째 날이다.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열리고 있는 이 대회의 오늘 일정은 독일 본 대학 명예교수이자 한글학자인 아르레히트 후베 씨의 안드레아스 에카르트를 다시 읽다와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이자 역사학자인 정재환 씨의 외국인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한글문학에 대한 제안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이어서 재미 소설가 이수정 씨의 이중 언어 환경에서 모색하는 한글문학의 확장’, 단국대 명예교수인 오민석 평론가의 디카시를 통한 한글문학 세계화의 현황과 전망’, 일본문학 번역가인 세종사이버대 한성례 교수의 번역을 통한 한국문학의 위상 제고 전략발표가 이어질 참이다.

 

  이제 한글은 한반도라는 울타리를 넘어 K, K문화와 함께 전 세계에 전파되면서 외국인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가 되었다. 세종학당재단이 85개 나라에 250개소의 한글 교육기관을 열어 세계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도 요청이 쇄도하여 100개국 300개소 교육기관 개설은 이제 시간 문제가 되었다. 전 세계에서 <대장금> <오징어> 등 한국의 드라마, 스포츠(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BTS 등의 가요에 이어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문학까지도 인정받고 있다. 드라마 대본이든 노래의 노랫말이든 문학작품이든 다 한글로 쓴 것이다. 그리고 800만에 육박하는 해외 교민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한글로 문학작품을 써 왔는데 오랫동안 국내 문단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세기가 바뀌면서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이제는 당당히 한국문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련되지 않았지만 교민들의 작품이 더 진정성이 있고 애틋하고 감동적이다.

 

  1015일자 행사의 마지막 발표자였는데 내게 주어진 시간이 10분 정도밖에 없었다. 특색 있는 10명 재미교포 시인을 소개하면서 교민들이 쓴 한글 시의 특성을 짚어보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5명을, 그것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소개하는데 지금 바로 마쳐달라는 메시지가 와서 5명은 언급도 못하고 말았다. 빠뜨린 5명 중 2명 시인을 이 자리에서 간단히 소개한다.

 

「생선가게 일기」는 자기 이야기다. 인하대학 무역학과 졸업 후 전자회사에 취직해 안정된 직장생활을 했지만 IMF가 왔다. 회사가 위기를 맞은 것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아 이민 보따리를 쌌다. 19998월이었다. 판단을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미국에서 오히려 고생문이 활짝 열렸다. 생선가게에서 생선 배 따는 일만 몇 달을 했다. 견습공 종업원에서 생선가게의 주인으로 도약, 도매를 시작으로 일식집, 이태리 식당, 식료품 가게를 차례로 열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이민생활 어언 26, 지금은 약품 도매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화자는 생선가게에서 일하며 생선 비늘을 벗기고 배를 가르는데, “숨겨두었던 사랑이며 그리움들이배를 가르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새롭게 돋아날/ 푸른 비늘을 갖기 위해/ 하루 종일 파도를 넘는다니, 상상력의 세계 혹은 환상의 세계로 날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시의 세계다. 직업에 충실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화자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다. 이 시에 어느 찬란한 바다 속에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방황을 했을 그 심해의 수온을/ 기억하면서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생선은 과거에 사랑을 했고 이별을 한 어떤 존재다. 다른 생선과의 사랑과 이별도 가능하겠지만 삶의 터전인 바다와의 사랑과 그 바다를 떠나온 아픔이 어떠했을까, 생선을 보며 화자는 생각해보는 것이다. 손님의 주문으로 생선비늘을 털자 우수수 떨어지는 것은 추억들이다. 이 시로 등단한 이후 뉴욕창작크리닉문화센터 강사를 하면서 를 나누고 있다.

 

  정국희 시인의 이 시를 영어로 번역하면 어부바를 어떻게 번역할까 궁금해 파파고에 넣어봤더니 piggyback으로 하기에 잠시 웃었다. ‘어부바라는 말도 그렇지만 등을 내주어 업는 행위도 지극히 한국적인 행위이다. 사람의 등이 이때는 전폭적인 사랑, 완전한 헌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누군가를 업고 가는 것을 등에 가슴을 대고/ 같은 쪽을 보며 한 몸으로 간다는 것이라고 했고, “애틋한 정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가 누군가를 업을 때, 그것은 단순히 보행을 돕는 것만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말 백 번을 할 것을 한 번의 행위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등을 내준다는 것, 업는다는 행위이다. ‘어부바’, 참 얼마나 정겨운 우리말인가. 정국희 시인의 시는 우리말의 보물창고 같다. 그만큼 한글을 찾아내고 살펴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땅의 시인들이 본받고 살펴보아야 할 시인이다.

 

  제4시집을 보니 우리말과 사투리의 아름다움을 살핀 시가 10편은 족히 된다. 미국에 가서 살면서 어쩌면 이렇게 순우리말을 잘도 구사하는지, 시집 원고를 읽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순우리말은 우리 정서를 살려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 땅의 시인들이 크게 배워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일랑절랑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너픈너픈너푼너푼의 사투리가 아닌가 한다. ‘너푼너푼은 엷고 넓은 물건이 자꾸 가볍게 날리어 흔들리는 모양이나 가볍게 너부시 자꾸 움직이는 모양을 가리키므로 대수롭지 않게딴말을 한다는 뜻이 아닐까? 「달이 시를 쓰는 곳」에 나오는 회창회창휘청휘청의 작은 말인 것 같고, ‘더트다는 무엇을 찾으려고 손으로 더듬는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다. ‘차란차란은 액체가 그릇에 가득 차 가장자리에서 넘칠 듯 말 듯한 모양이거나 물건의 한쪽 끝이 다른 물건에 가볍게 스칠 듯 말 듯한 모양을 가리킬 때 쓰는 부사이므로 찰랑찰랑치렁치렁에 가까운 듯싶다. 이런 사투리와 순우리말은 오지게’, ‘무덤 냄새’, ‘원추리 꽃등과 잘 어울려 토속적인 분위기를 멋지게 연출하고 있다. 「바람」에 나오는 느자구싹수’(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의 전남 방언이고, ‘속창아리’(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의 전남 방언이다. 「사주팔자」에 나오는 서털구털은 말이나 행동이 침착하고 단정하지 못하며 어설프고 서투른 모양이다. 「질투」에 나오는 뽀닥뽀닥은 북한 말인데, 물기가 있는 물건의 거죽이 말라 매우 빳빳하게 굳어진 모양을 뜻한다. 「이삿짐을 싸면서」에 나오는 기신기신은 게으르거나 기운이 없어 느릿느릿 자꾸 힘없이 행동하는 모양이거나 굼뜨게 눈치를 보며 반기지 않는 데를 자꾸 찾아다니는 모양을 뜻한다. 하지만 「눈빛」에 나오는 꼽발과 「이삿짐을 싸면서」에 나오는 뻣쌔지게는 끝내 그 뜻을 알아내지 못했다. 「일상의 길목」의 까란 것도 모르겠다.

 

​  우리말과 사투리를 애써 시어로 쓰는 이유를 알겠다. 미국에서는 영어를 쓸 일이 많을 테고, 모국어는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져 갈 것이다. 언어란 쓰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열심히 어렸을 때 썼던 우리말과 사투리를 기억해내(혹은 찾아내) 시어로 쓴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애국애족이 뭐 거창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한글로 시를 쓰는 것 자체가 애국애족이며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을 실천하는 것인데, 여기에 순우리말과 사투리까지 열심히 시어로 새기고 있으니, 그 노력에 대해 존경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교민들의 작품이 앞으로는 더욱 많이 연구될 것이다.

 

  세계한글작가대회는 17일에 나흘 동안의 일정을 마친다. 해외에서 이 대회에 참석한 수많은 분들이 자기가 거주하고 있는 나라로 가면 이번 대회 참석을 계기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면 한다. 국내 작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 한글로 문학작품을 창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큰 복이다. 한 문장이라도, 한 구절이라도 더 갈고 닦아 쓴다면 우리의 문학과 문화는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

 

  [윤영범 시인]

 

  1967년 인천 출생

  제물포고, 인하대 무역학과 졸업

  1999년 도미하여 현재 뉴욕 거주

  2001년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생선가게 일기」 당선

  2006년 계간 《문학나무》 신인상으로 등단

  2012년 미주윤동주문학상 수상

  현재 해외기독문학회 회원, 뉴욕창작크리닉문화센터 강사

시집 『그리움도 숨을 쉬어야 한다』

 

  [정국희 시인]

 

  2008년 미주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와 사람들동인

  재외동포문학상, 가산문학상, 동주문학상해외작가상 수상

  미주시문학회 회장,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 『맨살나무 숲에서』 『신발 뒷굽을 자르다』 『로스앤젤레스 천사의 땅을 거처로 삼았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승하시인#이승하시해설#정국희시인#윤영범시인#세계한글작가대회#코리아아트뉴스시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