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26】 김덕남의 "곳간의 쥐구멍

곳간의 쥐구멍
-도산서원 고직사庫直舍를 보며
김덕남
구멍을 막지 마라, 생명의 길인 것을
밥이란 목숨 위한 천부의 권리거늘
한 구멍 내어 주는 건 곳간을 지키는 길
서 생원 묘 선생도 드나드는 구멍이다
누 떼가 내달리듯 사자 갈기 휘날리듯
굶주린 벼랑 앞에선 저마다 생을 걸지
『문워크 moonwalk 』 (2025. 목언예언)
“도덕이란, 굶주린 이의 입속에 들어가는 따뜻한 밥 한 술이어야 한다.”
퇴계 이황이 말이다.
도산서원 고직사에는 곡식을 보관하는 곳간이 여럿 있다. 양 문을 닫으면 아래쪽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은 쥐구멍인 동시에 고양이가 드나들던 구멍이다. 생존을 위해 곡식을 탐하는 쥐와 그 쥐를 잡는 포식자가 공존하며 살 수 있게 만든 구멍이다. 아프리카 초원의 누떼와 사자가 공존하면서 사는 것과 같다.
조선의 퇴계 이황은 이(理)를 백성의 굶주린 배와 메마른 삶 속에서 실천하려 했다. 흉년이 들었을 때는 자신의 아끼던 책을 팔고 곳간을 열었다. 밥은 단지 음식의 아니라 목숨의 권리이며, 하늘이 허락한 정의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시인은 오늘 우리에게 되묻는다. 이 시대 대한민국은 재난과 고물가, 실직의 불안 속에서, 다시 ‘공동체의 도’를 묻는 시대가 되었다.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단순히 뿌려지는 돈이 아니다. 그것은 생의 벼랑 끝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손 내밀어주는 작은 쥐구멍이다. 그 구멍을 통해 다시 숨을 쉬고, 버틸 힘을 얻고 안도의 문을 열 것이다. 그 작은 지원금이야말로 국가의 심장에 뚫은 작은 쥐구멍이다.
“굶주린 벼랑 앞에선 저마다 생을 걸지”
시인의 시처럼 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루를 견디는 이유고, 내일을 기대하는 가능성이다.
“구멍을 막지 마라, 생명의 길인 것을”
강영임 시인, 코리아트뉴스 전문 기자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