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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개인전 ‘香遠益淸’… 청동 연꽃에 새긴 맑고 깊은 삶의 향기

임만택 전문 기자
입력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갤러리 DOKNEEP서 개최 30여 년 청동과 함께한 조각가… 연꽃 통해 정화·성찰·생명의 메시지 전해

차갑고 단단한 청동이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난다. 뜨거운 불을 견딘 금속은 어느 순간 부드러운 꽃잎이 되고, 진흙 속에서 피어나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은 인간의 삶과 정신을 비추는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다.

전시포스터

청동조각가 이대희(LEE, DAE-HEE)의 개인전 ‘香遠益淸(향원익청)’이 오는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갤러리 DOKNEEP에서 열린다.

 

‘향원익청(香遠益淸)’은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아진다’는 뜻이다. 중국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가 연꽃을 예찬한 「애련설(愛蓮說)」에서 비롯된 말로,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의 고결함을 상징한다.

 

오랜 시간 연꽃을 자신의 조각 언어로 다뤄온 이대희 작가에게 이번 전시 제목은 단순한 고전의 인용을 넘어 그의 작업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1,250도의 불을 지나 피어난 ‘청동 연꽃’

 

이대희의 연꽃은 자연을 그대로 모방한 꽃이 아니다. 단단한 금속을 자르고 두드리고 용접하며 꽃잎 한 장 한 장을 만들어가는 치열한 노동의 결과물이다.

 

그는 오랜 기간 용광로와 청동을 다루며 자신의 조형세계를 구축해왔다. 과거 개인전에서도 1,250℃의 고온을 견딘 청동을 통해 연꽃을 형상화하며 주목받았다. 차갑고 무거운 금속에서 연꽃 특유의 유연한 곡선과 섬세한 생명감을 끌어낸다는 점은 이대희 조각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작가의 연꽃은 때로 가느다란 줄기 끝에서 홀로 피어나고, 때로는 둥근 틀과 결합해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활짝 핀 꽃뿐 아니라 아직 피어나지 않은 봉오리, 시들어가는 형상까지 함께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식물의 생태적 묘사가 아니다.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을 통해 탄생과 성장, 소멸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생명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진흙에 뿌리내리되 물들지 않는 꽃

전시리플렛

연꽃은 동양문화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녀왔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맑은 꽃을 피우는 특성 때문에 불교에서는 깨달음과 청정함을 상징하고, 전통적으로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고결한 정신을 비유하는 소재로 사용돼 왔다.

 

이대희 작가는 이러한 연꽃의 상징성을 현대 조각의 언어로 옮겨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금속의 강인함과 꽃의 섬세함이라는 상반된 속성이 공존한다. 거칠고 단단한 청동은 작가의 손을 거쳐 부드러운 꽃잎으로 변하고, 연약해 보이는 연꽃은 오히려 금속이라는 재료를 통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생명력을 획득한다.

 

과거 그의 작품을 다룬 언론 역시 이러한 특징에 주목했다. 이대희의 연꽃을 두고 ‘혼탁한 물속에서도 아름다운 연꽃’, ‘차가운 청동금속에 연꽃향기가 피어난다’고 표현했으며, 그의 작업이 단순한 자연 재현을 넘어 인간의 삶과 내면을 성찰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연꽃은 진흙 속에 뿌리를 두지만 꽃과 잎에는 더러운 물이 쉽게 묻지 않는다. 작가는 그 속성에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발견한다. 외부 환경에 흔들리면서도 자신만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삶, 고통과 시련을 통과하면서도 내면의 맑음을 지켜내는 삶이 그의 연꽃 안에 겹쳐진다.

 

‘연심’에서 ‘향원익청’으로 이어지는 조형세계

 

이대희는 수십 년에 걸쳐 ‘연(蓮)’을 자신의 대표적인 조형 언어로 발전시켜 왔다.

 

2025년 열린 제14회 기획초대전에서는 ‘蓮心(연심)’을 중심으로 연꽃의 정신성과 내면성을 조각으로 풀어냈다. 당시 작품에서도 길게 뻗은 줄기와 간결하게 정제된 꽃잎을 통해 화려한 장식보다는 절제된 형태와 여백을 강조했다.

 

이번 ‘香遠益淸’전은 그러한 연꽃 작업의 연장선에서 한층 정제된 정신성을 보여준다.

출품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비움’이다. 둥근 틀 안에 검은 여백을 크게 남기고 한 송이 연꽃만을 배치한 작품은 오히려 비어 있는 공간을 통해 꽃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꽃과 여백, 빛과 그림자, 청동의 묵직한 물성과 가느다란 줄기의 긴장감이 만나면서 작품은 조각이면서 동시에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관람자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화려한 외형보다 작품 안에 숨은 고요함과 침묵으로 향한다.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멀리 퍼질수록 그 존재는 더욱 깊어진다. ‘향원익청’이라는 제목처럼 이대희의 연꽃 역시 강한 목소리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절제와 여백을 통해 관람자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30여 년 청동과 함께한 조각가 이대희

전시리플렛

이대희 작가는 영남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일본 KOBA TAKE KOBO에서 브론즈(BRONZE) 수업을 받았다. 개인전과 다수의 초대전·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영남대학교에도 출강했다. 세계희귀 유니버시아드대회, 람사르총회, 서울시립미술관, 금호미술관, 예술의전당, 한강 ‘흐름’ 프로젝트 등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꾸준히 작품세계를 확장해왔다.

 

또한 월담 이사장상, 대구 북구청, 영남대학교, 김천조각공원, 경주황성공원, 충효성당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그의 작업은 초창기 인체와 인간 내면에 대한 탐색에서 출발했다. 1990년대부터 청동의 물성을 직접 익히기 위해 주조 현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작업장을 운영하며 조각의 전 과정을 스스로 다뤄온 작가이기도 하다.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그의 작품세계는 ‘작품 하나하나에 푸른빛 혼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소개됐다. 인체와 삶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한 그의 조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과 생명, 그리고 연꽃이라는 보다 상징적인 언어로 깊어졌다. 청동이라는 물질은 그의 손에서 단순한 조각 재료가 아니라 오랜 시간과 노동의 흔적을 간직한 매개체가 됐다.

 

멀어질수록 더욱 맑아지는 향기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연꽃은 화려하게 피어난 꽃의 아름다움만을 말하지 않는다.

 

진흙에서 시작해 물 위로 올라오기까지의 시간, 뜨거운 불을 견디며 하나의 형태로 완성되는 청동의 과정, 그리고 오랜 세월 같은 소재를 반복하면서도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찾아온 작가의 삶이 한 송이 꽃 안에 함께 담겨 있다.

 

때문에 이대희의 연꽃은 어느 순간 작가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삶이 언제나 맑은 물 위에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혼탁한 현실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하고, 거센 바람과 뜨거운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빛과 향기를 잃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그의 청동 연꽃에서 읽힌다.

 

‘향원익청’.

 

향기가 멀어질수록 더욱 맑아지듯, 오랜 세월 한 길을 걸어온 작가의 조형언어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본질에 가까워지고 있다.

 

갤러리 DOKNEEP의 고요한 전시장에 피어날 이대희의 청동 연꽃은 관람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세상의 혼탁함 속에서 무엇을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우리에게 남게 될 ‘향기’는 무엇인가.

전시리플렛

전시 개요

  • 전시명: 이대희 개인전 ‘香遠益淸(향원익청)’
  • 부제: 향기는 멀어질수록 맑아진다
  • 작가: 이대희(LEE, DAE-HEE)
  • 기간: 2026년 9월 1일~10월 31일
  • 장소: gallery DOKNEEP
  • 주소: 전남 진도군 의신면 의신사천길 93
  • 장르: 조각·브론즈
  • 주요 소재: 연꽃
  • 작가 작업실: 조형연구소 / 경북 경산시 자인면 읍천3길 47-9
  • 문의: 010-3814-5678
  • 이메일: [email protected]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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