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38] 김강호의 “정의라는 활자”
정의라는 활자
김강호
쏟아져 내렸거나 어둠에 매몰됐거나
부릅뜬 고위층 눈에 주눅 들어 처박혔거나
자존심 견딜 수 없어 작렬하게 자폭했거나
목숨이 두려워서 몸종이 되었거나
명분 없는 명령에 항의하다 구속됐거나
독자를 깔아뭉개고 권력 밑에 숨었거나
홀로 서지 못하고 아첨하다 사라지는
진실이 진실을 잃어 슬픔보다 슬픈 현실
활자여 값없는 활자여 치욕스런 활자여

이 시에서 내가 붙잡은 것은 ‘정의’라는 관념이 아니라, 정의가 활자로 인쇄되는 순간 겪게 되는 타락의 역사였다. 정의는 본래 고개를 들고 서야 할 단어지만, 이 시에서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묻히고, 처박히고, 자폭한다. 나는 정의를 이상이나 신념으로 다루지 않았다. 대신 권력의 시선 아래서 굴절되는 활자,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형태를 바꾸는 문자로 불러냈다. 여기서 활자는 의미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의미를 배신하는 몸이 된다.
첫수에서 나열되는 ‘쏟아져 내렸거나’, ‘매몰됐거나’, ‘처박혔거나’, ‘자폭했거나’는 단순한 상황 묘사가 아니다. 이것은 정의가 취할 수 있는 네 가지 죽음의 방식이다. 자연재해처럼 무너지는 정의, 어둠 속에 묻혀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정의, 권력의 눈초리에 눌려 비굴해진 정의, 그리고 자존심만 남긴 채 스스로를 폭파하는 정의. 이 반복적 열거는 정의의 다양한 변주가 아니라, 결국 모두 패배로 귀결되는 하나의 서사임을 드러낸다. 정의는 어느 선택지에서도 온전히 살아남지 못한다.
둘째 수에서 정의는 더 이상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여기서 정의는 몸을 갖는다. 몸종이 되고, 구속되고, 숨는다. 나는 정의를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았다. 독자를 깔아뭉개고 권력 밑에 숨는 대목에서, 정의는 가해자가 된다. 이는 가장 아픈 지점이다. 정의가 독자를 밟고 선다는 것은, 말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순간을 뜻한다. 활자가 사람을 대신해 판단하고, 문장이 삶을 압도하는 현실. 이때 정의는 이미 정의가 아니다. 다만 권력을 합리화하는 문장일 뿐이다.
마지막 수에서 나는 이 시의 핵심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홀로 서지 못하고 아첨하다 사라지는’이라는 구절은 정의가 사라지는 방식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말해준다. 적과 싸우다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곁눈질하며 웃다가 증발한다. 진실이 진실을 잃는다는 표현은 자기부정의 극점이다. 이는 외부의 억압보다 더 잔인한 상황이다. 진실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스스로를 할인하는 순간, 슬픔조차 사치가 된다. 그래서 나는 ‘슬픔보다 슬픈 현실’이라 썼다.
마지막 호명, “활자여 값없는 활자여 치욕스런 활자여”는 저주의 형식을 띠지만, 실은 자기 고백에 가깝다. 이 활자는 타인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써온 문장이기도 하다. 정의를 말하면서도 안전한 자리에서 물러섰던 순간들, 침묵을 선택했던 기록들이 이 활자 안에 있다. 그래서 이 시는 고발이면서 동시에 참회다. 정의를 잃은 시대를 비난하기보다, 정의를 그렇게 만들어온 언어의 책임을 묻고 싶었다.
이 시조에서 정의는 결코 승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승리를 쓰지 않았다. 대신 패배한 정의의 초상을 활자로 남겼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의 정의가 감당해야 할 가장 솔직한 기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