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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28] 강서일의 "인공지능"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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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강서일

 

세기의 폭력적 결합이다.

오래전부터 예정된 필연이다.

인간에서 분화한 그는 이제

사람들의 신이 되었다.

화성까지 비행 궤도를 그리고

소설로 신인문학상을 거머쥐더니

마침내 아이들의 보모가 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노래를 불러주고

엄마보다 얼굴이 흰 아이들은

그의 명령에 기계적으로 순응한다.

찻집의 연인들도 그를 사랑하여

서로의 얼굴은 홀로그램이 되고

인공언어의 문맹인 신노인들은

기계 앞에서 또 하루를 굶는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장착된 그는

사람의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덤에 엎드린 여인의 등을 읽지 못하고

개와 늑대의 시간을 구분치 못하고

그저 바람 불어 슬픈 봄날도

슬픔의 게이지는 항상 ‘0’이다.

세기의 대결에서 패배한

바둑 챔피언이 아름다운 것은

흔들리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어제는

AI와 사랑에 빠진 여인이 있었고

오늘은 AI로 인간을 사유한다는 학술보고서가

세상을 강타했으니.

 

―『우주의 벌레 구멍』(한국문연, 2025)

 

시를 쓰는 AI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AI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AI 관련 시를 자주 접하게 된다.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현생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이런저런 문제 중에서 대단히 심각한 게 바로 AI에 대한 것이기에 시인들이 이 문제를 소홀히 다룰 수 없다. 지금까지는 우리는 지구 온난화와 탄소배출, 각종 신종 질병, 핵무기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3대 요소라고 간주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AI 의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짐으로써 과연 우리 인간이 기계, 그것도 통계치 활용인 AI에게 푹 빠져 간도 쓸개도 다 내주고 있는 것이 옳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편리하니까 애용하자는 찬성론자와 경계심을 갖지 않으면 종속된다는 회의론자로 나뉘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

 

  강서일 시인은 회의론자이다. 인간이 머리를 쓰려 하지 않는다, 귀찮다고 이것도 저것도 다 맡기고 인간은 놀려고만 한다, 기계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진다, 인간이 수동적으로 돼 간다, 활용과 비활용에 따라 세대 차가 점점 더 심해진다……. 시를 보니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이세돌을 격파한 알파고는 수많은 데이터를 취합한 구닥다리고 스스로 현안을 타개해 나가는 알파고 제로가 알파고와 싸워 100100승을 거뒀다나 어쨌다나. 게다가 요즈음 챗GPT를 써보면 짜식이 얼마나 친절하고 성실한지 기특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 바람에 인간의 창조적인 능력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회화, 작곡, 디자인, 건축, 논문 작성, 문학작품 수정을 AI가 거뜬히 해내고 있다. AI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늘고 있고, AI로 인간을 사유한다니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시인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이 이 위기를 극복할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The Buggles란 가수가 <Video Killed the Radio Star>란 곡을 부른 적이 있었다. 영상매체가 출현해 라디오 스타를 죽일 줄 알았는데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같은 영상매체가 라디오를 죽이지 못했다. 지금도 공존하고 있다. AI와 인간이 상부상조하는 미래를 꿈꿔본다.

 

  [강서일 시인]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영어) 졸업. 1991년 《자유문학》에서 시로, 《문학과의식》에서 평론으로 등단했다. 시집 『쓸쓸한 칼국수』『사막을 추억함』『카뮈의 헌사』『고양이 액체설』『우주의 벌레 구멍』과 번역서 『첫사랑 피카소』『비틀즈 시집』『대화의 신』 등이 있으며, 자유문학상, 한국시문학상, 미당시맥상을 수상했다. 국제펜한국본부 이사이며 여주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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