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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19] 이상국의 "시인 노트"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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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노트

 

이상국

 

새로 나온 문예지를 읽는다

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는 시들이 있다

그러나 다 이해되면 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시는 부족의 언어다

 

시보다 프로필이 긴 시인도 있다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다가

사람 사는 마을이 보이면 한 사날 묵어가고 싶다

 

시인들은 고양이처럼 노동을 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거만하다

그래서 아무도 시인을 겁내지 않는다

시인을 질투하는 건 시인들뿐

 

어떤 시인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에게는 출간한 지 십년 만에 2쇄를 찍은 시집도 있다

시처럼 끈질긴 것도 없다

 

요즘 시인들은 지면에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

나이를 가린다고 시도 가려지는 건 아니지만

시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일생의 업이 이거 하나인데 어떤 사람은 요즘도 시 쓰냐고 묻는다

달아나고 싶다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창비, 2025) 

 [해설]

 

   시는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요즈음 시에 대해 내가 느끼는 것이랑 이상국 시인이 느끼는 것이랑 너무나 많이 닮아 있어 깜짝 놀랐다. 1984년에 등단해 42년째 시를 쓰고 있다. 시간강사 시절까지 합치면 30년 넘게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에게 시작법과 시문학사, 시인연구를 가르치고 있다. 오래 교단에 서 있어서 내 나름대로 감식안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새로 나온 문예지에는 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는 시들이 있다. 이상국 시인은 그러나 다 이해되면 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시는 부족의 언어다라고 하는데 이 말에도 십분 동의한다.

 

  한때는 MZ 세대와 소통이 안 되어 학생들이 얄미웠는데 그들의 생각과 어법을 세대적 특성으로 인정하니 시가 이해도 되고 재미도 느끼게 되었다. 활자를 통해 세상을 읽은 세대와 영상을 통해 세상을 읽은 세대의 문학관이 같을 수는 없다. 마음을 젊게 가지려 애썼고 시를 젊게 쓰려고 노력했다. 수업시간에 나를 따르라고 외치지 않고 각자 개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읽으면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쓰면서 자기 땅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 땅을 차지해 성실하게 논밭을 갈던 이윤설과 금은돌이 사라져 애통해하기도 했다.

 

  시보다 프로필이 긴 시인이 여기에 있다. 시집을 10권도 더 냈고 평론집, 평전, 편저, 공저를 다 쓰면 너무 길어지니까 줄여 썼다. 모 단체의 회장, 부회장, 사무국장을 한 경력도 숨기려 애썼다. 상을 탄 적도 몇 번 있었는데 절반 정도는 숨겼다. 그래도 길었다. 명함을 받으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회원 수가 10개가 넘으면 사람이 아니라 귀신 같다. 속 빈 강정을 만들지는 않았다.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다가/ 사람 사는 마을이 보이면 한 사날 묵어가고 싶다는 말의 뜻이 실감난다.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심사를 하면서 양안다 시인의 제7시집을 읽게 되었는데, 바로 그런 기분을 느꼈다. 매일 1편의 시를 골라 해설하는 바로 이 지면에는 다양한 연령의 다양한 세계를 가진 시인들의 작품이 다뤄지는데 20, 30대의 시를 다루게 될 때는 이상하게 신바람이 난다. 젊은 세대의 생각과 고민, 사상과 표현이 충분히 이해되고 좋아지니 나이가 젊어진 것 같다. 내가 너의 시를 꽤 이해하지? 분석이 충분하니? 나 꼰대 아니지?

 

  이상국 시인은 1972년 등단했으니 어언 54년 동안 시를 써오신 것이다. 반세기 동안 시인의 눈에 들어온 수많은 시인 중에는 노동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거만한 사람,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는 사람, 그 나이보다 훨씬 젊게 시를 쓰는 사람 등 다양한 시인이 있었다. 지면에 나이를 밝히지 않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시가 젊다는 것은 상상력과 표현력이 새롭다는 뜻이리라.

 

  그런 시를 쓰고 싶은데 잘되지 않는다. 그저 평생의 업이라 생각하고 일신우일신 꾸준히 쓸 뿐이다. 10편을 발표하면 1편 괜찮은 것이 나오니 이 법칙도 희한하다. 나의 등단작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런 유의 시를 써주기를 바라는데 『우리들의 유토피아』와 『폭력과 광기의 나날』에서 충분히 다뤘기에 다른 곳을 향하여 갔다. 이상국 시인은 10년 만에 2쇄를 찍었다고 하셨는데 나는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31년 만에 2쇄를 찍었다.

 

  시의 마지막 연을 보고 박장대소했다. “일생의 업이 이거 하나인데 어떤 사람은 요즘도 시 쓰냐고 묻는다/ 달아나고 싶다는 말은 부끄러움을 무릅쓴 고백이기도 하고 나를 몰라주는 데 대한 서운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50년 넘게 꾸준히 써왔는데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네. 요즘도 시를 쓰고 있냐고?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지만 누구처럼 베스트셀러 시집을 내어 출판사가 빌딩을 사게 한 적도 없고, 10년 만에 재판을 냈으니 예나 지금이나 무명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상국 시인은 매일 시를 쓰고 있는 것이리라. 이게 내 삶이니. 내 業이니.

 

  매일 시평 쓰기를 만 3년째 하다 보니 하루에 보통 5권의 시집이 집으로 오는데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는 것이 공부가 될 때가 있다. 드문 일이지만 무릎을 친다. 내 시도 사람 사는 마을이 보이면 한 사날 묵어가고 싶다에 들어갈 시가 있어야 할 텐데, 아직도 역부족이다. 길이 막막하다.

 

  [이상국 시인]

 

  1946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으며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를 마치고 강원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1976년 《심상》에 「겨울 추상화」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백석문학상, 민족예술상, 강원민족예술상, 유심작품상, 불교문예작품상, 정지용문학상, 강원문화예술상, 박재삼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강원민예총, 강원작가회의 지회장, 만해마을 운영위원장과 만해문학박물관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구상선생기념사업회 대표를 맡고 있다.

 

  시집으로 『동해별곡』『내일로 가는 소』『우리는 읍으로 간다』『집은 아직 따뜻하다』『어느 농사꾼의 별에서』『뿔을 적시며』『달은 아직 그 달이다』『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등이 있으며 그 밖에 시선집 『국수가 먹고 싶다』『박재삼문학상 수상 시선집』과 고희 헌정문집 『뒤란의 노래』, 문학자전 『국수』, 동시집 『땅콩은 방이 두 개다』 등이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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