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59] 정계원의 "횡성한우"
횡성한우
정계원
내가 강릉발 KTX를 타고 서울로 실려 간다
횡성역 플랫폼에 잠시 머물렀다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가
횡성한우 스티커가 붙은 박스를 안고 탄다
박스에 ‘노모 순자 앞’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사내는 황소 눈알 굴리듯
좌석번호를 찾아 창가에 앉는다
저녁 노을빛처럼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둥근 발을 멈춘 열차는 서울역에 도착한다
어둔 플랫폼을 황급히 빠져나온 사내는
처마가 낮은 집의 노모에게 달려갔으리라
가난이 생을 할퀴어도 사내는
노모의 주름진 얼굴만 떠올렸으리라
그의 얼굴이 박꽃처럼 환해지니
사내의 낯빛도 푸른 들판이 되었으리라
지구를 가출한 나의 무명 저고리를 생각하며
발목에 쇳덩이를 찬 발걸음으로, 나는
플랫폼을 빠져나온다
―『어느 1924년생 쥐띠의 생활목록』(천년의시작, 2025)
![횡성 한우 _ 정계원 시인 [이미지:류우강 기자]](https://koreaartnews.cdn.presscon.ai/prod/125/images/20251114/1763073073087_604177111.png)
[해설]
본받고 싶은 효자
이 시의 화자는 이미 박스에 들어가 있는 횡성한우의 살점이다.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는 횡성한우 스티커가 붙은 박스를 안고 강릉발 서울행 KTX 열차를 탄다. 2004년부터 시작된 횡성한우 축제 기간인지도 모르겠다. 사내도 한평생 노동판에서 몸을 굴린(?) 가난뱅이고 노모도 ‘처마가 낮은 집’에 살고 계시니 무척 가난하다. 횡성한우라니! 1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순자라는 이름의 노모에게 횡성한우를 드릴 수 있는 기쁨에 들떠 사내는 열차를 탔고 이윽고 어머니를 찾아뵙고 특상품 횡성한우를 드린다. 아들이 내미는 한우 박스를 받고 어머니의 얼굴은 박꽃이 되었고 그 얼굴을 본 사내의 낯빛도 푸른 들판이 되었다. 화자인 한우의 입장이며 처지는? 마지막 연에 나와 있다. 불쌍한 한우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한우로 태어나 참수형을 당해 사람들의 식탁에 오른단 말인가. 움메에〜 생기기도 참 착하게 생긴 한우들.
이 시를 읽고 한참 울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횡성한우 세트를 택배로라도 선물해 드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십만 원이면 어머니의 얼굴이 환한 박꽃이 되게 했을 텐데, 불효가 후회되어 화장지를 뽑아 눈물을 닦았다. 2007년 설날 다음날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15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했고 30년 동안 문방구점을 했다. 불효자식을 울린 정계원 시인이 밉다.
[정계원 시인]
2007년 《시와 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접시 위에 여자』『밀랍물고기』『내 메일함에 너를 저장해』가 있다. 영랑문학상, 김동명문학 작가상 수상.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