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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이승하의 "형제 배는 용감하였다ㅡ충무공이순신함에서 대청함을 보며"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이승하의 "형제 배는 용감하였다ㅡ충무공이순신함에서 대청함을 보며"

이승하 시인
입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59]

형제 배는 용감하였다

ㅡ충무공이순신함에서 대청함을 보며

 

이승하

 

그날 진해 부둣가에는

순항훈련을 떠나는 해군사관생도를 환송하는 인파가

비를 맞고 있었다 201897

 

항해 일자 102일 항로 길이 6Km

10개국 12개 항구

기나긴 여정을 함께할 형제 배

 

형 배는 4400톤급 구축함 충무공이순신함

동생 배는 4200톤급 군수지원함 대청함

앞서거니 뒤서거니 거리 유지하면서

 

첫 번째 해상 유류 수급

구축함이 군수지원함으로부터 기름 20만 리터를 받는 해상 훈련

양 함에 정사각형 모양의 붉은 깃발이 올라갔다

 

호스로 연결되었으니 탯줄 같다

동생이 형한테 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자식에게 수유하는 탯줄

 

돌풍이 오면? 안전거리가 유지되지 않으면?

두 군함 모든 장병이 초긴장 상태로

기름이 옮겨지는 FAS(Fuel At Sea)를 보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 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여울져 가는 저 세월 속에

좋아하는 우리 사이 멀어질까 두려워

 

​파도 소리 잠재우는 나미의 노래

선상에서는 전단장과 참모들, 부사관들, 생도들 모두

배꼽을 쥐고 갑판에 쓰러졌다

 

선물이 대롱대롱 밧줄에 매달려 오는데

열어보니 건빵과 새우깡

에잇, 우리도 다 있는 거네

 

유류 수급은 잘 끝났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그저 속만 태우고 있지

늘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우리 두 군함

 

그날 날치들이 수면에서 하늘로 솟구쳤고

돌고래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놀면서

어두워질 때까지 충무공이순신함을 계속 따라왔지

 

ㅡ『해군』(202311월호) 

충무공이순신함에서 박창주 참모장(왼쪽)과 함께 한 이승하 시인 [사진 : 이승하 시인]

  [해설]

   해군사관생도들과 함께했던 나날

 

  오늘이 충무공 탄신일인데 이 날짜에 맞는 시를 못 찾아 졸시를 올린다. 2018년 가을에 연구년을 받아 해외의 대학에 가서 견문을 넓히려다 해군사관생도의 해외순항훈련에 동참하기로 했다. 진해항을 떠나온 지 여섯째 날인 912일 오후 2, 첫 번째 해상 유류 수급이 실시되었다. 두 함정이 1시간 반 정도 일정한 거리를 나란히 항해하면서 기름을 굵은 호스를 통해 공ㆍ수급하는 데는 노련한 기술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특히 사관생도들은 항해 시작 이후 처음으로 해상 유류 수급을 실시하는 것을 지켜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런 함대함 유류 수급을 표준장력장치 사용보급(STREAM Rig)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표준장력장치를 이용해 스팬 와이어(span wire)에 장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배에서 배로 기름을 보내는 방법이다.

 

  양 함정의 지휘부는 서로 무전기로 긴밀히 연락하며 안전거리를 유지하였고 해상 상태를 계속해서 체크했다. 사관생도들은 처음 보는 장면인지라 긴장된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누구의 장난이었을까 나미의 노래가 대청함 선상에 울려퍼졌다. 이어지는 K팝들. 다들 우하하 웃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훈련을 마쳤다. 나의 항해일지는 《문학나무》와 《해군》지에 실렸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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