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향기] 오이꽃 - 김이경
오이꽃
김이경
제철이라선지 오이가 크고 실하다. 겨울 오이보다 한 치는 길어 보이는 것이 휘어진 데도 없이 곧게 자랐다. 이렇게 실한 열매를 딸 때 얼마나 뿌듯했을까 생각하며 미끈한 몸체를 정성껏 씻었다. 손끝에 검불 같은 것이 묻었다. 말라비틀어진 오이꽃이다.
'뭐하러 여기까지 따라왔을까?'
물에 흘려보내려는데 자꾸 손바닥에 붙었다. 왠지 가슴이 아릿해졌다.

오이꽃은 장미꽃처럼 화사하지도 않고 호박꽃처럼 크지도 않다. 그 꽃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도 없고 그것을 노래하는 사람도 없다. 반기는 사람은 농부뿐이기 일쑤다. 그러나 잠시라도 눈여겨 본다면 작지만 옹골차고 다부진 금빛 별꽃에서 나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홀로 피는 수꽃과 달리 암꽃은 필 때부터 아기 오이를 달고 핀다.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부터 어미로서 짊어질 짐을 지고 태어나는 꽃이다. 아기 꽃이 아기 오이를 업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세 살 터울 누이 등에 업히던 동생이 생각난다. 포대기를 발끝에 끄는 누이와 그 누이 등에서 칭얼거리던 동생.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풍경화다.
작은 꽃에 업힌 아기오이는 덩굴손이 한 뼘씩 올라가는 대로 몸을 조금씩 늘이다 보면 어느새 가시 수염이 까슬까슬해지고 길쭉해진다. 그때쯤 활짝 펼쳤던 별꽃의 금빛 날개는 힘없이 처진다. 허리가 휜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후줄근해진 꽃이 제 매무새를 살필 새는 없다. 오이가 자라갈 앞길만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등에 산 같은 짐을 지고 하늘조차 뒤로하고 땅만 바라보며 시들어가는 꽃의 시간. 그것은 매일 한 올씩 제 몸속 금빛 실을 빼내는 일이다. 덩굴이 흔들릴까 염려하며 한 올, 돌바닥에 닿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며 한 올, 곁길로 휘어질까 구부러질까 애태우며 또 한 올... 금빛은 사위고 날개는 허물어진다.
마침내 곧고 미끈하게 자란 오이 끝에 매달린 검불 같은 것. 그것은 꽃이라고 하기엔 너무 남루하다. 그 남루에서 묻어나는 지극한 시간들. 차라리 목련이나 동백처럼 향기 품은 꽃이었을 때, 금빛 한 오라기쯤 남았을 때, 손 흔들고 훌훌 떨어져 내렸더라면...
그런데 어떤 마트에 켜켜이 쌓인 오이들이 모두 산발한 노파의 머리처럼 어지러이 마른 꽃을 달고 있다. 싱싱함의 증표로 내세우는 상술이란다. 그런 오이꽃은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지면 안 된다. 인고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등이 허물어지도록 키운 제 새끼들이 빛나도록 허물어진 몸을 더 드러내야 한다. 그 남루한 몸으로 마지막 기도를 올려야 한다. 문득 금빛으로 환하게 피었다가 하얀 웃음으로 떠나는 민들레 갓털의 그 표표함이 생각나 목울대가 뻐근해진다.
오이를 씻는다. 오이꽃 하나가 떨어진다. 손에 받아 쥐고 흐르는 물줄기 아래 한참을 망설인다.

[심향 단상]
작가는 마트에서 오이를 사와서 씻으며 오이 끝에 추레하게 달려있는 오이꽃을 보고 오이꽃의 삶을 어미의 삶으로 치환하여 생각해 봅니다.
오이 암꽃은 필 때부터 아기 오이를 달고 피어나 어미로서 짊어질 짐(아기 오이)을 지고 태어났고, 오이꽃은 오이가 다 자라도록 제 메마른 몸을 끊어내지 않고 버티며 오이의 상품 가치를 높여주기 위해서 마트까지 따라와 오이가 튼실함을 사람들에게 자랑합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어느 부모든 제 자식이 제일 예뻐서 자랑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또 어느 어미가 제 자식을 위해 못하는 것이 있을까요?
오이꽃의 꽃말이 '변화, 존경, 애모' 이니 작다고 업신여기면 안되겠습니다. 아주 작지만 옹골차고 다부진 별을 닮은 노란 오이꽃. 노란 꽃잎 다섯 개가 활짝 피면 금빛으로 반짝여 별처럼 보이고, 덜 펴서 오므려진 모양은 나팔을 닮았습니다. 작은 오이꽃에서 작가는 나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 때 바람이 오이꽃을 통과하면 나팔 소리가 날 수도 있겠습니다.
오이꽃의 삶이나 어미의 삶이 다르지 않습니다. 남루해진 오이꽃은 연세 드신 부모님을 연상케 합니다.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해 허리가 휠 정도의 고된 삶을 살아오셨지요. 후줄근해진 모습으로 자신의 매무새를 살필 여유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몸속에서 금빛 실을 한 올 한 올 뽑듯이, 뼛속 양분을 다 뽑아내며 살아온 삶. 그러다보니 어느새 모습은 남루하고 후줄근해져버렸습니다.
힘없고 남루해진 부모라고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작은 오이꽃이 오이를 매달고 있는 모양을 보며 작가는 자신이 어릴적 동생을 등에 업고 포대기로 감싸서 어부바 해줬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너무 어려서 포대기가 끌릴 만큼 작았던 작가는 그때가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어부바는 그 시절에 많이 볼 수 있었던 장면입니다.
작가가 지금까지 어미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 한 편의 글에서 다 읽혀집니다.
손주를 어부바한 할머니가 지하철에 타셨다
경로석은 물론 일반석 사람들도 일어났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흔드신다
앉는 게 불편하고 서는 게 편하다고
잠을 자는 손주에게는....
유모차 바퀴에서 해방된 체온
- 김유조 시인의 시 '어부바'에서
손주를 업고 지하철에 타신 할머니는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지만 앉지 않으십니다. 할머니가 자리에 앉으시면 잠자고 있는 손주는 다리가 불편하여 분명 깨어서 울 것임을 할머니는 아시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도 곤히 자고 있는 손주가 깨어서 울게 하고 싶지 않으신 거지요. 모든 부모, 어미, 조부모까지 자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헌신하며 살아오셨습니다.
마지막 줄의 '유모차 바퀴에서 해방된 체온'은, 할머니께서 손주를 업음으로써 손주는 차가운 유모차에서 해방됐고, 할머니와 손주의 체온은 맞닿아 서로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이를 튼실하게 키우기 위해 오이꽃은 스스로 작게 피어났을까요.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부터 어미로서 짊어질 짐(오이)을 지고 태어났습니다.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은 초라하게 피었습니다.
오이꽃은 처음부터 제 새끼를 잘 키우겠다고 작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모습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밝은 희망을 품은 별빛 닮은 꽃으로 피었지요.
제 새끼만 잘 키울 수 있다면 어떤 초라한 모습도 견뎌낼 수 있고,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한 번 피어 시들 생명! 그런 어미(오이꽃)의 마음을 오이가 아는 걸까요?
오이는 튼실하고 곧게 자라나 어미의 바람대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작가는 오이꽃이 어미로서 제 새끼들이 빛나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를 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작가의 모성은 처절한 외침이 되어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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