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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의 시조 읽기 25 】김계정의 "별일"
문학/출판/인문
[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25 】김계정의 "별일"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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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 김계정 이미지: 강영임 기자
별일 / 김계정 [이미지: 강영임 기자]

별일

 

김계정

 

수런거리는 입을 볼 때면

귀가 솔깃 궁금해도

소나기 지나가듯, 바람이 거둬가듯

왜 그래 묻지 않겠네, 공범은 되지 않겠네

 

아무 일 아니라는데

별일 없다는데

가지는 꺾어지고 새는 이미 날아갔네

말로써 무너져버린 누군가의 우주가

 

『울만큼 울고 난 후에』 (2025. 알토란북스)

 

상처는 칼끝보다 말끝에서 더 자주 생긴다.”

 

셰익스피어가 남긴 말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무심히 흘러나온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말이란 얼마나 가벼운가. 그리고 그 가벼움이 한사람의 우주를 흔들기도 한다.

 

말은 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수군거리는 입을 볼 때마다 솔깃해지는 것은 우리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 말은, 말하는 이들을 위한 흥밋거리에 불과하다.

 

가끔, 거짓이 진실로 둔갑돼 사실이 돼버릴 때가 있다. 안쪽에 쟁여온 비밀의 소리를 꺼냈을 때, 그 얘기가 부풀려져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아무 일 아니라는데 별일 없다는데, 없는 곳에서 쑥덕이는 그림자 같은 말이 등에 꽂힌다.

 

사람이 떠나는 순간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지탱해 주리라 믿었던 사람과 언어가 무너지면 마음도 함께 주저앉는다. 우리가 무심히 뱉은 말이 누군가의 평범했던 하루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

 

말은 책임이다. 묻지 않는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공감이며 사랑이다. 누군가 침묵으로 방어하고 있을 때, 소나기 지나가듯, 바람이 거둬가듯 시간과 공간을 헐겁게 해주면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수많은 말들이 태어나 스미고 번진다. 어둠 속으로 스미는 말도 있고 밝음으로 스미는 말도 있다. 어둠과 밝음 그 경계에서 미래로 향하는 말의 시간을 함께 가보면 어떨까.

 
강영임 시인, 코리아트뉴스 전문 기자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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