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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77] 변현상의 “벌교”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갯벌이라는 성소에 대한 현대적 헌사”

벌교

 

변현상

 

전라도

보성

벌교

 

저 갯벌이 종교다

 

날름

날름

 

주워 먹는

꼬막은 구휼금이고

 

널배가 넓은 신전을

헌금도 없이

지나간다

벌교 _ 변현상 시인

변현상의 「벌교」는 지역적 풍경을 재현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곧 그것을 인간의 생존과 신앙, 노동과 구휼의 근원적 관계를 사유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확장한다. “전라도 / 보성 / 벌교”라는 세 지명의 배열은 단순한 지리적 좌표가 아니다. 넓은 공간에서 좁은 장소로 이동하는 이 압축된 지명열은 시적 시선을 한 점으로 수렴시키며, 마지막에 도달한 ‘벌교’를 하나의 정신적 장소로 전환한다. 그리고 “저 갯벌이 종교다”라는 선언에 이르러 지리적 공간은 마침내 가치와 신념의 공간으로 변한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전통적인 시조의 3장 구조를 현대적 행갈이와 의미 단위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엄밀한 음수율을 기계적으로 따르기보다 초장·중장·종장의 기능적 구조를 살려 시조 특유의 ‘제시-전환-수렴’의 미학을 구현한다. 초장의 “전라도 / 보성 / 벌교”가 공간을 제시한다면, 이어지는 “저 갯벌이 종교다”는 그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중장에서는 “날름 / 날름 / 주워 먹는 / 꼬막은 구휼금이고”를 통해 추상적 의미가 구체적 삶의 현장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종장에 해당하는 “널배가 넓은 신전을 / 헌금도 없이 / 지나간다”에서 앞서 제시된 ‘종교’와 ‘구휼’의 의미가 하나의 역설 속으로 수렴한다. 즉 이 작품의 형식은 전통 시조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그 내부의 호흡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초장의 가장 큰 특징은 극도의 생략과 점층적 압축이다. “전라도 / 보성 / 벌교”는 문장이라기보다 세 개의 명사적 표지에 가깝다. 그러나 이 단절된 지명들은 오히려 강한 리듬을 만든다. 행마다 하나의 지명이 독립함으로써 독자는 ‘전라도→보성→벌교’라는 공간적 이동을 눈으로 직접 경험하게 된다. 이는 시조의 초장이 담당하는 ‘기起’의 기능을 현대적인 공간 편집으로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지명인 ‘벌교’가 단독으로 놓이면서 공간적 도착이 곧 시적 사건이 된다.
 

그 뒤에 놓인 “저 갯벌이 종교다”는 초장의 의미를 뒤집는 전환점이다. 여기서 ‘벌교’는 더 이상 지리적 장소가 아니다. 지명에서 상징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저’라는 지시어 역시 중요하다. 멀리 있는 관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구체적 풍경을 가리키면서, 그 갯벌을 ‘종교’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격상한다. 이처럼 구체와 추상의 급격한 충돌은 현대시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압축의 한 방식이다.

 

중장에 들어서면 시의 호흡은 더욱 짧아진다. “날름 / 날름”이라는 반복은 의미보다 소리가 먼저 독자를 붙잡는다. 전통 시조의 운율이 일정한 음수율을 통해 형성되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반복과 행갈이가 새로운 율격의 역할을 한다. 두 번 반복되는 ‘날름’은 갯벌의 물결과 꼬막의 생명력, 그리고 인간의 채취 행위를 동시에 환기한다. 짧은 두 행은 일종의 운율적 여백을 형성하며, 뒤이어 오는 “주워 먹는 / 꼬막은 구휼금이고”의 의미적 충격을 강화한다.
 

특히 “날름 / 날름”과 “주워 먹는”의 구어적 감각은 작품의 언어를 의도적으로 낮춘다. 앞서 “종교”와 “신전”이라는 높은 층위의 어휘를 제시했지만, 시인은 곧바로 ‘날름’, ‘주워 먹는’이라는 생활어를 끌어들인다. 이 고어와 속어, 성스러운 어휘와 생존의 어휘 사이의 낙차가 이 작품 특유의 미학을 만든다. 신성은 일상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먹고 일하는 행위 속에 있다는 의미가 형식적 언어 배치에서도 구현되는 것이다.
 

“꼬막은 구휼금이고”의 ‘-이고’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의미를 완결하지 않고 다음 장으로 넘기는 연결어미이기 때문이다. 이 열린 문장은 시조의 중장이 종장으로 넘어가는 구조적 긴장을 현대적으로 활용한다. 독자는 ‘꼬막은 구휼금이고’라는 미완의 진술 뒤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의미를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종장의 “널배가 넓은 신전을”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전환된다. 이처럼 문법적 미완결이 장과 장 사이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종장은 이 작품의 형식적·의미적 완결점이다. “널배가 넓은 신전을 / 헌금도 없이 / 지나간다”는 앞의 모든 이미지들을 하나의 장면으로 통합한다. 전통 시조에서 종장은 앞의 내용을 전환하거나 비약하면서 작품 전체를 수렴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작품 역시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다만 그 방식은 고전적인 교훈이나 감탄이 아니라 역설적 이미지의 제시다. 신전인데 헌금이 없고, 종교인데 제의가 없으며, 인간은 경배하지 않고 그곳을 통과한다. 바로 이 모순이 작품의 의미를 완성한다.


또한 종장의 “널배가”는 매우 중요한 형식적 전환이다. 앞에서는 갯벌과 꼬막을 바라보았다면 마지막에는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움직임이 등장한다. 정적인 풍경이 동적인 장면으로 바뀌면서 시가 닫힌다. ‘지나간다’라는 동사는 작품 전체를 시간 속으로 밀어 넣는다. 갯벌은 고정된 신전이 아니라 조수와 노동과 인간의 생애가 끊임없이 오가는 살아 있는 공간이 된다. 따라서 종장은 의미의 결론인 동시에 운동의 결론이다.
 

이 작품은 전통 시조의 정형성을 음수율의 엄격한 준수에서 찾기보다 3장의 의미적 골격과 종장 중심의 전환 구조에서 찾는다. 초장이 장소를 세우고, 중장이 생존의 풍경을 펼치며, 종장이 그것을 신전의 이미지로 회수한다. 다시 말해 ‘장소→생명→신성’이라는 상승 구조를 취한다. 여기에 짧은 행갈이, 반복어, 연결어미, 마지막 동사의 운동성이 현대시조의 새로운 율격을 형성한다. 결국 「벌교」에서 형식은 내용의 단순한 그릇이 아니다. 형식 자체가 갯벌의 조수처럼 들고 나며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다.

시인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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