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32] 유승희의 "어떤 상" , "은방울꽃"
어떤 상
유승희
채소밭 받침대 위 쉬고 있는 잠자리들
여름방학 자연 숙제 곤충 채집 떠오르네
숙제를 내지 못하여 벌 청소를 했었지
동무들이 잡아 오던 매미와 잠자리들
맡아놓고 앉았다가 슬그머니 놓아주고
눈물로 얼룩진 일기 글짓기상 받았었지
은방울꽃
다섯 살 때 따라갔던 수리사 봄 소풍 길
보물찾기 나선 길에 처음 만난 새하얀 꽃
울리는 은방울 소리 다가가서 앉았지요
한 가지 꺾고 싶어 내밀던 두 손 앞에
선생님 자연사랑 말씀 문득 떠올라서
향기만 가득 움켜쥔 채 손을 펴지 못했지요
―『미주시조』(미주시조시인협회, 2024년 3호)

[해설]
아이에게 배울 생명존중사상
미국 교민들이 재미시조시인협회를 결성해 연간지로 시조문예지를 내고 있으니 경하할 일이다. 앞으로 관심을 갖고 교민들이 쓴 시조를 살펴보도록 해야겠다. 국내 시조 문단에서 활동하다 이민 간 분도 계시고 미국에 간 이후에 국내 문단을 두드려 등단한 분도 계신데 다들 실력이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 모국어로 문학작품을, 그것도 시조를 쓰고 있음에 입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싶다.
앞의 시조는 한 착한 소녀의 생명 사랑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방학 중에 곤충을 죽여야 할 수 있는 곤충 채집 숙제를 하지 않아 벌로 청소를 하게 된 아이는 동무들이 잡아 온 매미와 잠자리를 놓아주곤 했다. 사내아이들이 잡아 와 곤충채집통에 넣어둔 곤충을 놓아주었으니 난리가 난 모양이다. 그 사연을 일기로 써 글짓기상을 받았으니 얼마나 잘된 일인가. 이 작품은 현대시조의 날렵함과 경쾌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조가 ‘정형’이라는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압축미와 정제미(整齊美)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한다.
뒤의 시조는 더 어릴 때 이야기를 갖고 썼다. 언니나 오빠가 간 소풍을 따라간 적이 있었나 보다. 은방울꽃이 얼마나 예뻤던지 따려고 움켜쥐었는데 선생님이 언니 오빠들에게 하신 “자연사랑” 말씀이 생각나 손을 펴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귀여운지. 이 작품은 동시조라고 할 수 있다. 두 편 다 생명존중, 생명사랑이 주제이다. 아이의 이런 마음이 혼탁한 이 세상을 살리고 있다.
[유승희 시인]
미주시조시인협회,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 우리시조마당 회장 역임. 2018년 《시조생활》로 등단. 2021년 시천 유성규 시조문학상 해외부문 수상.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