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85] 조영환의 "성(聖) 복실 "
성(聖) 복실
조영환
말[言]을 파는 일로 늙은 그의 집에는
꽃 피는 열여섯 복실이가 산다
인간의 나이로는 미수(米壽)*
이빨은 빠져나가고 귀도 먹었다
이름이나 쾌락을 얻으려
혹은 가족들의 밥을 벌기 위해
허언을 일삼지 않았던
그는 이제 인간의 밥상을 넘보거나
밥을 구걸하지 않는다
거처는 산들바람이 부는 암자가 아니지만
배가 고프면 탁발승처럼
쓰레기통 곁에 쭈그렸던 몸을 일으켜
새장 속의 새나 화분 속의 화초가
한 줌의 물이나 햇빛을 시주받듯이
인간이 먹다 남긴 식은 밥 한 덩어리를
주린 뱃속에 달게 담는다
정신을 가리기에 너무 헐렁해진
가죽을 납의(衲衣)처럼 두르고
복실이가 깊고 침침해진 눈으로
이따금 나의 눈을 들여다볼 때
나는 인간만이 갈 수 있다는 천국을 부정한다
아니, 인간만이 간다는 천국을 긍정한다
*미수(米壽): 88세를 이름.
—『심장의 무게』(다시올문학회, 2025)

[해설]
개는 인간을 위해 목숨도 바치는데
개 나이 열여섯이면 인간으로 쳐 88세가 맞다. 노환을 앓고 있을 나이다. 저 집의 복실이는 이빨도 많이 빠지고 소리도 잘 안 들리나 보다. 그런데 ‘가족들의 밥을 벌기 위해 허언을 일삼지 않았던 그’라고 하니 개가 아니고 아버지 같다. 같이 늙어가는 아니, 같이 늙은 존재? 어럽쇼, 화자가 개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개가 화자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 당신도 저처럼 눈이 침침한 것 같은데요. 안구건조증? 눈곱도 자주 끼고 눈물도 자주 나죠? 백내장? 녹내장?
시의 마지막 두 행이 의미심장하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은 마태복음 19장 24절과 마가복음 10장 25절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뻥이 심한 말이 아니라 비유법을 쓴 것이다. 그런데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은 안분지족하는데 우리 인간은 온갖 나쁜 짓을 일삼기 때문에 기독교나 천주교에서 말하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교인 중에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만이 갈 수 있다는 천국을 부정한다/ 아니, 인간만이 간다는 천국을 긍정한다”는 말은 역설로 느껴진다. 아무 죄를 짓지 않고 늙은 개와 온갖 죄를 지으면서 늙은 사람이 천국에 같이 갈 수는 없다.
요즘 서울시내에 동물병원이 더 많이 생겨났다는데 더 많아진 것이 동물 학대 관련 뉴스다. 사람에게는 자기가 전락하거나 타락하거나 실패하거나 실수하거나 하면 동물을 학대하는 습관이 있는 것인가? 동물에게 화풀이하는 무척 나쁜 사람들이 있다. 고양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인 경우가 많지만 개는 일편단심(一片丹心)이다. 인간에 대한 충성심이 눈물겨울 정도다. 참으로 갸륵한 개를 무참히 죽이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주여! 주여! 탄식하며 부르짖는다. 전기 자전거에 자신이 키우던 개를 매달고 달려 죽게 한 혐의를 받는 50대가 경찰에 입건됐다. 충남 천안동남경찰서는 50대 A씨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24일 밝혔는데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길이 온통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주여! 주여!
[조영환 시인]
충북 괴산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2009년 계간 《다시올문학》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양주작가회의 회원. 흰뫼문학회, 전망 동인. 다시올문학회 회장.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