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83] 민승희의 "모교를 가다"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83] 민승희의 "모교를 가다"

이승하 시인
입력
[시조 해설]

모교를 가다

 

민승희

 

배움은 이어져도 발자국은 낯설다

 

햇살은 아직까지 물고기처럼 파닥이고

 

어느새 텅 빈 교정엔 잡풀들만 우북하다

 

등 굽은 벚나무가 창문 안을 굽어보는

 

오래된 교실 문을 약속처럼 활짝 열 때

 

화들짝 놀란 벌레들 어지럽게 달아난다

 

기억 속 시간들이 몸을 묻는 고향 폐교

 

살갑던 친구 얼굴 이름들도 삭아가고

 

용암산 훤한 이마가 먹구름을 걷고 있다

 

—『눈 위에 눈』(고요아침, 2018)

 

모교를 가다_민승희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50년 만에 방문한 모교

 

  얼마 전에 전남 고흥, 광양, 순천에 일이 있어 다녀왔다. 이른바 ‘지역민’과 대화를 나눴는데 광양제철소가 기능을 거의 상실하면서 인근 지역의 경기(景氣)도 죽고 인구도 줄고 학교도 폐교가 되고……. 고흥 인구가 6만, 광양 인구가 15만 5천, 순천 인구가 27만 5천인데 계속 줄고 있으며 늘어날 요인이 없다고 한탄하는 것이었다. 세 도시에 아이들이 안 보이고 젊은이들이 안 보이는 것이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교사 출신 시조시인 민승희의 시조집을 읽다가 발견한 이 시조에는 폐교가 되고 만 학교의 교정을 둘러보는 졸업생의 비애가 담겨 있다.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운동장. 벌레들의 천국이 된 교실. 곧 비라도 내리려는지 교정에서 멀찍이 보이는 용암산은 구름에 휩싸여 있다. 화자의 마음이 지금 그토록 어둡다. 전국에 이렇게 폐교가 되고 만 초등학교가 이 학교뿐이랴. 이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텐데, 그 어른들이 아이를 안 낳거나 하나만 낳아 발생한 이 나라 교육계의 슬픈 현실이다.  

 

  김의철이란 가수가 70년대 후반에 활동했는데 <마지막 교정>이라는 노래는 지금도 종종 듣고 있다. 가사가 이렇다. “마지막 밟는 이 교정에 남길 이 노래는 모든 선생님과 아우들께 띄우리니 내 항상 언제 어디서나 이 노래를 즐겨 부르리니 그리고 내 이 노래를 항상 기억하리 교정 뒤안에서의 생각나는 이 일 저 일 이제 모두 제각기 갈 길 찾아 돌아보리 우리 선생님의 지혜로움 내 언제곤 배우리 언제곤 나를 잊으셔도 나는 배우리 그리곤 내 이 노래를 항상 즐겨 부르리니 내 항상 언제 어디서나 이 노래를 즐겨부르리 교정 뒤 안에서의 생각나는 이 일 저 일 이제 모두 제각기 갈 길 찾아 돌아보리” 학교를 떠나면서 석별의 정을 듬뿍 담아 지은 노랫말이 참 감동적이다.

 

  장기결석으로 고등학교를 퇴학당한 나는 중학교가 모교인데 오랜만에 김천 성의중고등학교에 8월 25일에 가보았다. 이지은 사회과 선생님의 안내로 고등학교 교장실에 가보니 김진연 교장 선생님과 이해근 교감 선생님이 밝게 반겨주시어 감격하였다. 내년에 성의여고와 합친다는 소식이 혹시 이 지역의 인구 감소와 연관이 있나 싶어 걱정되는 것이었다. 학생 수가 줄고 있지는 않다고 하셔서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2025년 7월 31일 기준 김천시의 인구수는 고작 13만 4,669명이다. 금릉군과 합친 인구임에도 서울의 한 구 인구보다 적다. 인구 그래프를 보니 계속해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방의 소멸. 이 나라 인구정책에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인데 누가 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일이다. 그래도 모교의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아이들, 농구하는 아이들이 있어 사랑스러움과 안쓰러움을 함께 느끼면서 후배들을 멀찍이서 바라보았고 교정을 잠시 둘러보았다. 얘들아! 나 중학교 27회 졸업생이란다! 외치고 싶었다.

   

  [민승희 시인]

 

  초등학교 교사로 오랫동안 어린이들과 함께했고, 교감으로 명예퇴임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2012년 아시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었다. 2017년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받았다. 시조집 『눈 위에 눈』과 동시집 『오월이』를 냈다. 수필로 KT&G 문학상을 받았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승하시인#시조해설#좋은시조#코리아아트뉴스시조해설#모교를가다#민승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