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56] 이승하의 "어떤 옛날 얘기"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어떤 옛날 얘기

 

이승하

 

내 어릴 적 아저씨 얘기

아저씨 어릴 적 시골 마을에

실지 있었던 일이래

신랑 각시 아직 아기 없었지만

남의 집 품이나 팔고 살았지만

사이가 그리 좋을 수가 없었대

빼앗긴 나라 호열자까지 번져

토사하는 사람이 앞집 옆집 뒷집

아저씨 살던 집은 용케 무사했더래

신랑이 앓아누운 옆집 행랑 각시는

병구완 해도 해도 더 심해지자

먹지도 않고 울기만 하더래

반쯤 죽은 사람 내다버리려

마을 어른들 들이닥쳤을 때

각시는 아무 말도 없더래

정자나무까지 따라오던 각시

거기서 다시 신랑이 토하자

순식간에 그걸 핥아서 먹더래.

 

―『사랑의 탐구』(문학과지성사, 2025년 재판 4)  

어떤 옛날 얘기 _ 이승하 시인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어떤 옛날 얘기 _ 이승하 시인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오늘은 빼빼로 데이

 

  오늘은 1111, 빼빼로 데이다. 친구 사이나 연인 사이에 초콜릿이 발린 과자인 빼빼로를 주고받는데 이날은 숫자 1이 네 개의 빼빼로를 세워 놓은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생겨난 기념일이다. 젊은 층 연인들 사이에서 빼빼로나 초콜릿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자리를 잡았으므로 대한민국식 발렌타이 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부산과 영남의 여고생들 사이에서 빼빼로처럼 날씬해지길 기원하며 서로 빼빼로를 교환한 것이 기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길쭉한 모양의 빼빼로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에 맞는 시를 찾다가 못 찾아 졸시를 올린다. 이 시의 내용은 아저씨를 아버지로 바꾸면 100% 사실이다. 내가 10대 소년이었을 때 콜레라(호열자) 발생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당신이 직접 목격한 일이라고 하면서 일제강점기 때의 경험담 하나를 들려주시는 것이었다.

 

  호열자가 온 나라에 창궐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갔는데 장례식을 치를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동네에서 한참 떨어진 땅에 구덩이를 크게 파고 시체를 갖다 묻는 게 장례식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이른 젊은이는 새신랑은 아니었지만 혼인한 지 몇 년 안 된 젊은이였다. 그 마을의 이장쯤 되는 사람이 일꾼을 사서 의식도 잃고 시체나 다를 바 없는 그를 지게에 지고 공동묘지로 가는데 아내가 서럽게 울면서 남편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내 아버지가 목격하였다. 호열자의 주된 증세가 토사곽란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신랑이 마지막으로 토하자 각시가 미친 듯이 달려가 남편이 게워낸 토사물을 핥아먹더라는 것이다. 같은 병에 걸려, 같은 고통을 겪으며, 같이 죽은 그 젊은 여자의 산발한 모습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얘기하시곤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종이에다가 한자를 이렇게 쓰고는 말씀하셨다.

 

 “그런 죽음을 순사(殉死)나 순절(殉節)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요즘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 여자는 남편 없이는 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남녀 간의 사랑이란 건 또 무엇일까? 사랑에 대한 나의 탐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사랑의탐구#이승하시인#이승하시해설#이승하자작시#빼빼로데이에읽는시#코리아아트뉴스#빼빼로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