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기자의 시선] 초록 물결 속 붉은 전설, 7월 능소화가 전하는 이야기

7월 초의 시골은 온통 녹음으로 가득하다. 짙은 초록빛으로 물든 산과 들이 자연의 생명력을 자랑하는 이 계절, 그 풍경 속에서 유독 강렬하게 시선을 끄는 붉은 꽃이 있다. 바로 능소화다. 마치 여름의 정점에서 시간을 붙잡고 싶다는 듯, 담장 위를 타고 오르며 타오르듯 피어난 능소화는 시골 마을의 정취를 더욱 짙게 만든다.

능소화는 흔히 담쟁이넝쿨처럼 담이나 기둥을 타고 오르며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꽃잎은 주황빛이 도는 붉은색으로, 한낮의 태양처럼 선명하고 강렬하다. 본래 중국이 원산인 능소화는 고려시대에 들어와 지금은 전국의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널리 분포해 있다. 그 이름의 유래조차도 '능히 웃는다'는 뜻을 지니며,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하는 매력을 갖췄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꽃에는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옛 궁궐에 살던 한 궁녀가 임금의 총애를 받다가 갑작스레 외면당한 뒤,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결국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다. 그녀가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능소화라는 것이다. 임금의 처소로 가는 담벼락에 피었다 하여, 여전히 그를 향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고도 전해진다. 이 전설은 능소화의 선연한 붉은빛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단순한 여름꽃이 아닌, 사랑과 기다림, 상처와 인내를 상징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능소화는 한 송이씩 피기보다는 줄기를 따라 다발로 피어나 담장 전체를 수놓는다. 멀리서 보면 불타는 듯한 붉은 폭포처럼 보일 정도다. 특히 오래된 초가집이나 돌담에 피어난 능소화는 마치 시간마저 멈춘 듯한 정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시골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능소화는 한 편의 시가 되고, 오래된 사랑의 이야기가 된다.
최근에는 도시의 정원이나 공원에서도 능소화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능소화의 매력은 시골의 오래된 풍경 속에서 빛난다. 인공적인 구조물 위가 아니라, 오래된 담장, 푸른 숲, 고요한 마을 골목과 어우러질 때 능소화는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낸다. 자연과 세월, 인간의 정서가 한데 어우러진 결과물이 바로 이 붉은 꽃이다.
[억수같이 내리는 날 만난 능소화_ 동영상]
능소화는 비록 초여름의 짧은 시기를 장식하고 사라지지만, 그 강렬한 자태와 이야기는 보는 이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누구나 가슴 속에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 담벼락에 붉게 피어난 능소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이종희 : 조각가, 화가, AI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