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시 /시조

[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53] 김연동의 “점묘하듯, 상감하듯”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미완의 존재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점묘하듯, 상감하듯

-애벌레

 

김연동

 

개망초 흔들리는

성근 풀밭에 누워

비색(翡色)의 하늘위에

점묘하듯 상감(象嵌)하듯,

진초록

내 작은 꿈을

가을볕에

널고 있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허물 한 짐 벗어놓고

나방으로 날고 싶어

잔잎마저 갉아먹는,

그 속내

죄다 비치는

퉁퉁 부은

애벌레  

점묘하듯, 상감하듯 - 애벌레 _ 김연동 시인 [이미지: 류우강 기자]

김연동의 시조 「점묘하듯, 상감하듯 - 애벌레」는 자연의 미세한 생명을 통해 존재의 형성과 변모를 드러낸 작품이다.

 

첫째 수 초장에서는 개망초 흔들리는 / 성근 풀밭에 누워라는 한적한 공간을 제시하며, 느슨하고 비어 있는 풍경 속에 화자의 내면 상태를 겹쳐 놓는다. ‘성근이라는 표현은 미완과 여백이며, 아직 채워지지 않은 삶의 결을 암시한다. 이어 중장비색의 하늘 위에 / 점묘하듯 상감하듯이라는 구절에서 시적 시선은 예술적 기법을 끌어들여 존재 형성의 방식을 비유한다.
 

종장 진초록 / 내 작은 꿈을 / 가을볕에 / 널고 있다는 시적 정서를 한층 구체화한다. ‘진초록은 미성숙하지만 충만한 생명력을 지닌 상태를 의미하며, ‘널다라는 동사는 내면을 외부로 드러내는 행위이자 변화를 준비하는 몸짓으로 읽힌다. 특히 가을볕은 성숙과 소멸의 경계에 놓인 시간으로, 그 위에 꿈을 펼쳐 놓는 모습은 삶의 전환기를 통과하는 존재의 자각을 드러낸다.

 

둘째 수에서는 시상이 전환되며 애벌레의 구체적 형상이 부각 된다. 초장에서탱자나무 울타리에 / 허물 한 짐 벗어놓고라는 구절은 탈피의 이미지를 통해 과거 자아를 내려놓는 결단을 상징한다. 탱자나무의 가시는 고통과 제약을 의미하며, 그 울타리는 삶의 경계를 드러낸다. 이어 중장나방으로 날고 싶어 / 잔잎마저 갉아먹는에서 애벌레의 행위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변모를 향한 절실한 욕망으로 읽힌다. 현재를 소진해야만 새로운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변화의 필연적 고통을 내포한다.


마지막 종장의 그 속내 / 죄다 비치는 / 퉁퉁 부은 / 애벌레는 시 전체의 의미를 응축한다. ‘퉁퉁 부은육체는 미완의 상태와 과잉된 욕망을 동시에 드러내며, ‘속내가 비친다는 표현은 숨김없는 존재의 투명성을 통해 오히려 절실한 내면을 부각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애벌레의 형상을 통해 미완의 존재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형상화한 시조라 할 수 있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시인 김강호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