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50] 이승하의 "모녀는 용감하였다"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모녀는 용감하였다

ㅡ한순서가 딸 이주희에게

 

이승하

 

네 작은 몸 하나가 산을 들 수 있단다

그 몸에 신바람이 실리면

그 손과 발에 장단이 실리면

산을 들었다 놓았다

파도를 쓰러뜨렸다 일으켜세웠다

 

몸을 날려라 종이비행기처럼

돌고 또 돌아라 팽이처럼

오고무五鼓舞는 북이 뚫릴 정도로

상장고上粧鼓는 북채가 부러질 정도로

네 온 힘이 실려야 한다 젖 먹던 힘까지도

 

춤판 따라다니며 엄마 춤을 보았으니

내가 가르친 것은 춤밖에 없었다

응석부리는 것도 너는 춤으로

떼쓰는 것도 너는 춤으로

내 딸아 엄마 잘못 만난 내 딸아

 

너를 젖먹이다 춤추었고

너 재워놓고 또다시 춤추었다

같이 춘 모녀 전승 무대가 열 번이 넘었지

나는 살아서 더 이상 소원이 없고

죽어도 더 이상 여한이 없다

 

주희야 내 딸아 아직도 이 엄마는 춤춘다

나보다 더 높이 땅을 박차고 올라라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라라

산을 번쩍 들었다 놓고 바다를 춤추게 해라

달덩이 같은 내 딸아 신들려 춤추는 내 딸아

 

ㅡ『월간 춤』(20213월호)

한순서, 이주희의 공연 연습 

 [해설]

 

   어제 114일 밤 7시 반부터 9시까지 서울 남산극장에서 한 <전통을 딛고 오늘을 추다> 공연을 보았다. 위의 시는 코로나 시절에도 했던, 한순서-이주희 모녀 공연을 처음 보았을 때 쓴 것이다. 4년이 지났는데 어머니는 더 원숙해졌고 딸은 더 박력이 넘쳤다.

 

  한순서 여사는 1941518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84,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유연하게 움직이며 <화관무>를 추었다. 궁중무용의 품격에서 창작무용의 가미가 돋보이도록 구성한 춤이다.

 

  <추풍명월>은 가을밤의 정취 속에서 피어나는 남녀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남녀의 사랑을 입춤, 화선무, 한량무의 바탕으로 조화롭게 합쳐 보여주었다. 화려함 속에 절제의 미를 보여주었다.

 

 <승무>는 강태홍류의 <승무>를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비통한 몸짓으로 앉았다 일어서서 나중에는 장삼을 벗고 북을 치고 때리고 얼르고 달래고……. 4명이 북을 치는데 완전히 신들린 몸짓이었다. 그 큰 극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북을 치고 때렸다. 부열추, 허서영, 서이라 등 내가 무용대용실습이론 과목을 가르친 학생들이 출연해 무척 반가웠다.

 

  6명이 추는 쌍검대무는 춤의 폭이 크고 활달하여 위엄과 비장함 속에 돋보이는 춤사위와 절제미가 돋보인다. 칼춤치고는 전투장면은 없는 것이 특징인데 그래서 전쟁이나 죽음을 상징하지 않고 질서와 평화를 꿈꾸는 내용이다.

 

  상장고는 전 공연의 하이라이트다. 이주희 춤꾼이 우두머리가 되어 남성 6명을 데리고 한바탕 장고품을 추는 것인데 걷고, 뛰고, 날고, 돌고……. 그러면서도 계속 장고를 때리고 두드리니 도대체 그 열정과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불가사의하다.

 

  평남수건춤은 남도시나위를 사용하는 남한지역의 살풀이춤과 달리 서도소리를 반주음으로 사용하는 북한지역의 춤사위가 구현된 수건춤이다. 단아함과 역동성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춤사위와 수건으로 풀어낸 무용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

 

  한순서는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 가 부산의 김동민과 가야금 산조의 명인 강태홍에게 한국 전통춤과 국악을 배웠다. 17세에 자신의 이름을 건 한순서 전통춤 연구소를 개소, 이듬해에 개인발표회를 열었다. 그해 한국 전통춤의 거목 이매방과 제1<춘향뎐>에서 이도령과 성춘향을 즉흥 듀엣으로 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후 전통춤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한순서, 이주희의 공연 연습 

  한순서는 딸이 춤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으면 했다. 너무나 고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전자전보다 애끓고 진득한 것이 모전자전이다. 모녀는 손톱으로 서로를 콕 찌르면서도, 꼭 끌어안는 사이다. 마음을 툭툭 던지는 부자보다, 모질더라도 마음을 끈질기게 당기는 사이가 모녀다. 이 교수는 그래서인지 한순서 명인의 춤 유전자를 그대로 빼다박았다. 70년대 초 한 명인이 이화여대 앞에서 춤 연구소를 차리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 문밖에 밥만 놓아두고 가던 이 교수가 문틈 사이로 익힌 춤은 그 어느 학생보다 뛰어났다.

 

  한 명인은 당시에는 전통춤을 배우려는 학생이 많았다. 180명이 학원을 가득 채웠어요. 그중에서도 주희가 소질이 있었다. 주변에서 주희도 가르치라고 이야기를 해서 연습실에 들이기는 했는데 양심상 딸을 잘 가르칠 수는 없었다.”며 웃었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돈을 내고 배우러 온 이들인데, 주희는 내 딸인 데다 무료로 학원에 오니 이래라 저래라 소리도 못했다. 근데 내 자식이지만 끼가 남달랐다.” “어머니가 지나가면서 아무 말 없이 팔을 치고 갔다. 좀 더 위로 올리라는 뜻이었지. 그렇게 춤을 배워 나갔다고 기억했다.

 

  한 명인은 딸과 무대에 서면 좋은 점이 많다며 싱글벙글한다. “눈짓만 하면 서로 다 안다. 입 모양만 봐도 서로 통하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놓여 춤을 더 잘 출 수 있다. 엄마라고 수그러드는 것이 고맙다.”고 했다. 한 명인은 12남 중 장녀인 이 교수를 더 없이 믿음직하다는 눈길로 쳐다봤다.

 

  동적이고 화려한 춤인 화관무’, 자연과 인간이, 남과 여가, 바람과 달이 어울려 추는 추풍명월’, 북소리가 극장을 폭발시킬 듯했던 승무’, 날렵하고도 비장미 넘치는 장검무’, 전투적인 북놀이의 움직임과 상장고의 가락이 어우러진 상장고’, 한순서가 직접 춤을 추며 전수하고 있는 평남수건춤을 보는 동안 넋이 나가 나는 천상에 있었다. 공연이 하루만 하고 끝나 무척 아쉬웠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승하시인#시해설#이승하의시해설#코리아아트뉴스시해설#이주희무용가#한순서무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