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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14】 참말로
문학/출판/인문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14】 참말로

시인 김선호 기자
입력
사설시조

 

  참말로


  김선호 

 

  꼴통도 저런 꼴통은 내 생전에 첨 보니라

 

  다짜고짜 깨물더니 벌건 손을 놀리는디 왕희지처럼 내갈긴 기 철거예정, 출입금지!’라 그래도 분이 안 삭나 ‘X’자를 크게 긋드만 쓸고 닦던 주인네나 드나들던 인정이나 왜 아니 그립겠는가 평생 함께 벗했는디 찬바람 혼자 맞으니 헤까닥 돌아삔 기라 지 몸 지가 지킨다고 저리 앙탈 안 부리나 삼팔선 초소마냥 대문 굳게 닫아걸고 몸값 더 올려달라고 현수막도 걸었드만

 

  참말로 안쓰럽데이 혼자 속을 긁는 기라 업자가 거들떠보나 떠난 주인이 한번 찾나 안방은 서생원네가 신방 차린 지 오래니라 낮은 그래도 양반이제 밤은 아주 흉흉하데이 이 집 저 집 밝던 불은 저승 문턱 벌써 넘고 때맞춰 찾는 달빛도 그래 더딘지 모르겠다데 섬뜩한 골목길은 쓰레기가 대장이라 소름 돋는 귀곡성에 변주를 얹으면서 수북이 성을 쌓고는 승전가를 부른데이

 

  웰다잉 그기 젤인디 뭔 노무 죄가 그래 많은지…

 

재개발구역
재개발구역 - 사진촬영 김선호 시인

  검정 선글라스 낀 사내들이 세단에서 내린다. 우당탕 치고받는 몸싸움도 잠시, 휘두르는 몽둥이에 주민들이 밀려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골목은 잠잠하다. 재개발 소재 영화에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다. 이렇게 재개발은 힘의 논리로 시작된다.

 

  주민이 쫓겨난 자리에 홀로 남은 건 주택이다. 문을 잠그고 출입금지라는 붉은 글씨를 큼지막하게 벽에 갈긴다. 드나들지 말라고 테이프도 두른다. 하지만 보상, 철거, 신축으로 이어지는 공정은 멀고도 길다.

 

  그러면서 동네는 점점 흉물로 타락한다. 청소년이나 노숙자가 들락거리고 결국은 비행이나 범죄의 온상으로 변한다. 담배꽁초와 빈 소주병이 속 쓰린 듯 나뒹군다. 자고 나면 몰래 버린 쓰레기도 공터마다 넘쳐난다. 양심을 갉아먹는 밤은 야속하고도 섬뜩하다.

 

  지켜만 보는 빈집 심사도 어지럽다. 다정했던 주인 대신 들끓는 쥐 떼가 밉다. 쓰레기 더미가 뿜어내는 냄새도 역겨울 테다. 달이라도 얼른 뜨면 좋겠거늘, 제시간에 오는데도 더디게 느낄 만큼 외로움이 클 테다. 사람이나 집이나 말로가 중요하다. 저승 가는 마지막 길, 진짜로 참 말로가 관건이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김선호 시인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으밀아밀』등 네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 

시인 김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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