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김수린의 "엉거주춤"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88]
엉거주춤
김수린
침대 모서리 기둥 잡고
반쯤 일어서다 풀썩
엉덩방아 찧고
또 찧고
잠자리가 앉을 자리 찾는 듯
두 팔 벌려 하느적 하느적
둥그런 오리 궁둥이
씰룩씰룩
봉긋 벌어진 입술 사이로
말근 침 한 방울 쪼르르 떨어지며
열 달 먹은 젖 힘 다해서
마침내 엉거주춤
섰다!
잘했다 손뼉 치며
뻣뻣한 무릎 굽혀서
할머니도 엉거주춤
엉거주춤
춤을 춘다
—《애틀랜타 글여울 문학》 제4호(시산맥사, 2025)

[해설]
아기가 일어섰다!
아기가 기어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쓸 때면,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만 아기가 첫발을 내딛고자 시도할 때의 모습은 귀여운 것을 넘어 경이롭고 장하고 위대하지 않은가.
김수린 시인은 아이가 침대 모서리 기둥을 잡고 반쯤 일어서다 풀썩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을 제1연과 2연에서 아주 재미있게 그려나간다. 혼자 힘으로 마침내 엉거주춤 섰을 때, 아마도 이 집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집에서는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아이가 서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 기뻐 뻣뻣한 무릎을 굽혀 잘했다 손뼉을 치며 엉거주춤 춤을 추니 이 집에 기적이 두 번 일어났다. 아기가 섰다는 것, 그리고 할머니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춤을 췄다는 것.
아기는 이제 걸음마를 할 것이다. 뒤뚱뒤뚱 비틀비틀 걷는 것도 신기하고 타박타박 걷는 것도 신기하고 쏜살같이 뛰는 것도 신기할 것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성장 과정이지만 매 순간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려니! 모든 생명은 그토록 경이(驚異)로운 것이려니!
[김수린 시인]
치과의사. 둘루스 소재 개인 치과병원 운영. 제2회 애틀랜타 문학상 수필부문 최우수상. 애틀랜타 순수문학회 회원.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