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규 칼럼] 탱크데이'와 '책상에 탁' 오너 리스크의 구조적 민낯, 그리고 사죄의 방향
2026년 5월 18일, 제46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 당일 오전 10시, 스타벅스 코리아의 공식 앱과 홈페이지에 한 장의 홍보물이 게시되었습니다. 단테, 탱크, '나수데이 이벤트의 일환으로 '탱크 시리즈' 텀블러를 판매하면서, 홍보물 정중앙에 날짜 5/18을 강조하고 그 옆에 '탱크데이'라는 문구를, 왼쪽에는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을 나란히 배치한 것 입니다.

문자를 읽는 순간, 이것이 단순한 상품명 조합이라는 해석은 불가능해집니다. '탱크'는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를 짓밟고 들어온 계엄군의 전차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단어입니다. 책상에 탁!'은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전두환 정권이 내놓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그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직접 연상시킵니다. 광주 시민은 광주 사람으로서 굉장히 어이없고 황당하고, 그런 이벤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것 자체에 경악했습니다.
이 논란은 단순한 마케팅 실수를 넘어 역사 인식 부재'라는 비판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결국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직접 사과문을 발표하며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를 전격 경질하는 초강수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사과와 경질이 과연 충분한가,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책임의 이행인가를 묻고자 합니다. 단순한 위기 수습의 평가를 넘어, 이 사태가 드러낸 한국 대기업 지배구조의 구조적 병리와 오너 책임의 본질에 대해 직시하려 합니다.

우연이 아닌 패턴, 4년간 누적된 오너 리스크의 궤적
이번 사태를 우발적 실수로 규정하려는 시도에 우리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2022년부터 시작된, 문서화된 패턴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1월 5일, 정용진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 숙취해소제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테다. 멸공!!!"이라는 글을 게시했으며, 해당 게시물은 인스타그램이 '신체적 폭력 및 선동에 관한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위반'을 이유로 삭제 조치했습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삭제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사뜸 #노빠꾸 #ㅁㅕㄹㄱㅗㅇ" 같은 태그를 달며 지속적으로 이 정치적 행보를 공개 공간에서 이어갔습니다.
이 멸공 게시물로 인해 신세계 계열사에 대한 소비자 불매운동 조짐이 번졌고, 신세계 주가는 1월 10일 오전 8.2% 급락했습니다. 현장 직원들도 즉각 반응했습니다. 이마트 직원은 익명 앱 블라인드에 중국 대상 판매는 이제 접어야죠. 오너 일가 중 한 명이 멸공이라 했으니 중국인들 썩 꺼져라 선포했다고 봅니다"라고 썼고, 신세계인터내셔날 직원은 "우리도 힘든데…"라며 허탈함을 드러냈습니다. 정작 불이익을 가장 먼저 감당한 것은 총수가 아니라, 현장에서 소비자를 마주하는 직원들이었습니다.
2025년 7월에는 더욱 교묘한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정용진 회장의 인스타그램 계정(@yj_loves) 소개글에 자음·모음을 분리한 형태로 적힌 문자를 거울에 비추면 '멸공'이 드러나는 이미지가 온라인에 확산되면서 또 다른 멸공 논란이 불거졌고, 이후 해당 문구는 삭제됐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농담이 아닙니다. 직접 표현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조직 문화에 지속적으로 각인시키려는 의도적 행위로 읽히기에 충분합니다.
같은 시기,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기간 종료 사흘 전, 정 회장은 한남동 단독주택을 255억 원에 처분하여 약 24억 원의 세금을 이념적 소신을 전면에 내세웠던 그가 세금 앞에서는 철저히 실리를 택한 이 장면은, 그의 공개적 언행이 얼마나 선택적이고 편의적인 것이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스타벅스 코리아는 이미 한 차례 같은 방식의 위기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2022년 서머캐리백 발암물질 검출 논란 이후 송호섭 전 대표가 경질되었고, 그 자리에 손정현 대표가 선임되었습니다. 그리고 4년 만에, 같은 방식으로 또다시 대표가 경질되었습니다. 위기 때마다 대표를 갈아치우는 이 방식이 과연 '구조의 변화'인지 '얼굴의 교체'인지, 이제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격노한 회장의 사과문, 그리고 해소되지 않은 세 가지 물음, 신세계그룹은 정 회장이 이번 사태에 대해 '격노'했으며, 그룹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징계를 주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5월 19일, 정 회장 명의의 사과문을 통해 있어서는 안 되고 용납될 수도 없는 부적절한 마케팅"이었음을 인정하고, 이번 사안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음을 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이것만 보면 전례 없는 수준의 총수 직접 책임 인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사과문에는 해소되지 않은 근본적인 물음이 세 가지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 물음, 격노는 진짜입니까?
온라인에서는 과거 '멸공' 발언과 각종 정치적 논란을 언급하며 의도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었고,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스타벅스는 문제 문구를 수정하는 단계를 거쳐 결국 게시물 전체를 삭제하고 이벤트를 중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탱크'와 '책상에 탁!'이라는 조합이 5월 18일에 게시되도록 기획, 승인, 공시되는 전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이것이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능한가요. 경향신문의 보도가 지적했듯, 이번 일이 정 회장의 과거 '멸공' 발언과 연관지어 해석되자 신속하게 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격노'가 진정성 있는 분노인지, 아니면 브랜드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퍼포먼스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사과문의 언어가 아니라 이후의 행동이 증명해야 합니다.
두 번째 물음, 마케팅 검수 체계의 붕괴는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신세계그룹은 사태 발생 경위와 승인 절차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으며, 전 계열사 마케팅 콘텐츠 검수 과정을 재점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 실질적 의미를 가지려면, 기획-실무-중간관리-임원-대표 승인에 이르는 전 과정 중 어느 단계에서 누가 이 홍보물의 의미를 인지했는지, 혹은 왜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는지가 공개적으로 '밝혀져야 합니다. 심의 절차 강화'라는 말은 어느 기업 위기 사과문에도 등장하는 표준 문구입니다. 구체성 없는 약속은 약속이 아닙니다.
세 번째이자 가장 핵심적인 물음, 오너 자신의 구조적 책임은 어떻게 이행됩니까?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대한민국 공동체와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런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며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적 맥락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경고가 담은 본질적 질문은 유효합니다.
5·18기념재단은 기업의 이윤 추구와 마케팅의 자유도 공동체의 비극적 역사 위에 행사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으며, 광주전남추모연대는 이번 사태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피맺힌 역사를 상업적 마케팅의 조롱거리로 전락시킨 명백한 역사적 참사"로 규정했습니다.
정용진 회장은 4년에 걸쳐 자신의 이념적 지향을 공개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표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조직 문화와 내부의 역사 감수성 결여는, 총수의 언행과 무관한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는 말은 경영학에서도 유효합니다. 리더의 가치 지향은 조직 전체가 공유하는 암묵적 기준선을 만듭니다. 총수가 박종철 열사와 5·18 영령의 희생을 가볍게 여기는 정치적 감수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온 조직에서, 마케팅 실무자들이 그와 유사한 문구를 5월 18일에 게시하는 것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과연 개인의 일탈인가요, 아니면 조직이 학습한 가치 체계의 결과인가요.
이 질문에 정용진 회장의 사과문은 답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책임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책임 이행의 최소 조건을 우리는 이번 사태에 직접 대입해 보아야 합니다.
우선, 명확한 인정의 문제입니다. 정 회장은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음을 통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마케팅에 대한 책임'과 '4년에 걸쳐 형성된 조직 문화에 대한 책임'은 다른 것입니다. 전자를 인정하면서 후자를 외면하는 것은 반쪽짜리 인정입니다. 진정한 인정은 왜 이 조직에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가능했는지, 그 구조적 원인을 자신의 리더십과 연결하여 명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진정성 있는 사과의 방향입니다. 사과문은 5·18 영령과 유가족, 광주 시민, 그리고 국민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빠진 이들이 있습니다. 신세계그룹 계열사 직원들은 멸공 논란 때도, 그리고 이번에도 가장 먼저 소비자의 분노와 비난을 몸으로 받아낸 사람들 입니다. 전국의 스타벅스 매장 바리스타들, 이마트·신세계백화점 직원들, 그 누구도 이 홍보물을 기획하지 않았으며, 총수의 정치적 언행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본질적인 구조적 변화의 문제입니다. 정 회장은 엄격한 역사의식과 윤리적 기준 정립을 위해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임직원 교육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역사 감수성을 문제 삼기 전에, 그 감수성의 기준선을 설정해온 것이 바로 총수 자신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탱크데이'와 '책상에 탁!'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은 조직을 만든 것이 4년간의 '멸공' 행보라면, 해법은 임직원 교육이 아니라 총수 자신의 공개적 행보와 언어에 대한 자기 검열의 의지입니다. 그리고 그 의지는 말이 아니라 이후의 침묵, 혹은 변화된 언어로만 증명될 수 있습니다.
더 넓게 보면, 이 사태는 한국 재벌 체제의 지배구조 결함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SCK컴퍼니(스타벅스 코리아)의 최대주주는 지분 67.5%를 보유한 이마트이며, 이마트의 최대주주는 정용진 회장이 지배하는 신세계그룹입니다. 의사결정의 정점과 책임의 정점은 동일인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재벌 구조에서는 이 연결이 전략적으로 흐릿하게 유지됩니다. 위기 발생 시 현장 대표를 전면에 내세우고, 총수는 '격노'한 심판자의 위치에서 징계를 내립니다. 이 구조에서 총수는 영원히 권한을 행사하는 '위'의 위치에 있으면서, 동시에 책임을 지는 '아래'로는 내려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반복되는 한, 어떤 사과문도 어떤 대표 교체도 구조를 바꾸지 못합니다. 신세계 주가가 2022년 멸공 논란 직후 8.2% 급락했듯, 시장은 이미 오너 리스크를 수치로 계산합니다. 소비자들은 이번 사태 직후 버디패스를 해지하고 스타벅스 카드 환불 인증을 SNS에 공유했습니다. 이것이 브랜드 신뢰가 붕괴되는 방식입니다.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사건마다 조금씩 더 단단해지는 불신으로, 그것은 서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축적됩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문제가 터졌을 때 가장 빠른 사람을 잘라내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 문제가 자신의 가치 지향에서 비롯되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용기입니다.
사죄와 사퇴는 가장 아래에서 시작되어서는 안 됩니다.
책임은 언제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피값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며, 현장 노동자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고, 소비자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5월 18일의 무게는, 텀블러 하나의 이름으로 소비될 수 없습니다.
조선규 |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