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음악
[지영순의 삼삼한 음악이야기]

[지영순의 삼삼한 음악이야기 특별기획 ⑤ ] 《바이로이트에서 만난 바그너》 야외 음악회

소프라노 지영순 전문위원
입력
바이로이트의 잔디밭을 뒤덮은 감동, 《로엔그린》이 울려 퍼지다

바이로이트의 여름은 도시 전체가 음악으로 움직인다.

페스티벌 기간이면 세계 각지에서 바그너와 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작은 도시를 찾아온다. 그리고 이날, 그 열기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야외 음악회가 열렸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합창단이 들려주는 바그너의 《로엔그린이다.

무대 앞 넓은 잔디밭은 일찌감치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찼다. 의자를 가져온 사람, 잔디에 편안히 자리를 잡은 가족, 멀리서 이 음악을 듣기 위해 바이로이트를 찾은 음악 애호가들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아, 이것이 세계적인 음악축제를 즐기는 방식이구나.’

거창한 격식보다 음악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 음악이 극장 안에만 머물지 않고 도시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흘러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바이로이트 극장 앞 넓은 잔디밭을 가득 메운 음악 애호가들

■ 잔디밭이 거대한 객석이 된 순간

야외 음악회의 매력은 극장과 전혀 다르다.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리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음악이 시작되면 

일제히 무대를 바라본다.

 

수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기다리는 모습에서 축제의 진짜 힘을 느꼈다.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이란 유명한 성악가와 화려한 공연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그 음악을 함께 듣고 즐기는 문화가 있을 때 비로소 축제가 완성되는 것이다.

바이로이트의 잔디밭은 이날 거대한 야외 객석이 되었다.

 

바이로이트 오페라 축제 합창단 전체 무대 사진

첫 소리에 느꼈다, ‘역시 바이로이트다’

그리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합창단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첫 소리가 울리는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

‘역시 바이로이트다.’

 

성악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합창과 성악을 지도해온 내게 좋은 합창은 단순히 많은 사람이 함께 노래하는 음악이 아니다.

서로의 호흡을 듣고, 발음을 맞추고, 수많은 개별적인 목소리를 하나의 음악적 방향으로 모아야 한다.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합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극의 분위기를 만들고 거대한 드라마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로엔그린》의 장엄한 선율이 수십 명의 목소리를 타고 야외 공간으로 밀려 나오는데 

그 울림이 대단했다.

 

녹음으로 듣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귀로 듣는다기보다 소리가 몸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분석하며 듣던 나도 어느 순간 분석을 멈추었다.

그저 듣고 있었다.

감격과 감동, 그 자체였다.

자연 속 무대와 관객이 하나가 된 바이로이트의 야외 음악회 풍경.

■ 수많은 목소리 가운데, 내 눈에 들어온 두 사람

그런데 이날 내게는 또 하나의 특별함이 있었다.

수많은 합창단원 가운데 무대 중앙 소프라노 파트에 딸 수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뛰어난 성악가들과 함께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를 노래하고 있는 딸의 모습을 객석에서 바라보는 마음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성악가 한 사람이 그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와 훈련, 시간이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피아노에서는 사위 Karl이 반주를 맡아 합창단의 거대한 호흡을 받쳐주고 있었다.

나는 객석에서 두 사람의 음악을 동시에 듣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음악을 분석하는 성악가도,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도 아니었다.

그저 가슴 벅찬 엄마와 장모였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합창단의 소프라노로 무대 중앙에 선 딸 김수지.
바그너 축제 오페라 합창단과 반주로 함께한 사위 Karl의 피아노 연주 모습

■ 거대한 《로엔그린》 끝에 찾아온 작은 장미 한 송이

음악회가 끝나자 잔디밭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날 내게 가장 오래 남은 피날레는 따로 있었다.

 

우리 가족의 가장 어린 관객 나엘이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연주를 마친 아빠 Karl에게 다가갔다.

작은 손에서 아빠의 손으로 건너간 장미 한 송이.

 

조금 전까지 수십 명의 합창단이 만들어낸 바그너의 장엄한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면, 

이번에는 어린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가 또 하나의 공간을 따뜻하게 채웠다.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보다 아름다운 앙코르가 또 있을까.

 

《로엔그린》 연주를 마친 아빠에게  손주 나엘이가 전한 빨간 장미 한 송이.

음악은 무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이로이트에 머물며 여러 공연을 보고 바그너의 음악을 만나면서 한 가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위대한 음악은 악보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노래하는 사람이 있고, 연주하는 사람이 있고, 

그 음악을 듣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그 모든 것이 만나야 비로소 ‘축제’가 된다.

이날 내가 들은 것은 바그너의 《로엔그린》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슴에 담아온 것은 한 작품의 감동보다 더 컸다.

 

잔디밭에는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이 모였고,
딸은 그들 앞에서 노래했으며,
사위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손주는 아빠에게 장미 한 송이를 건넸고,
나는 그 모든 순간을 감격하며 마냥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가족에게 평생 기억될 2026년 바이로이트 축제 무대 뒤 기념 컷!

2026년 여름, 바이로이트.

음악이 사람을 모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한 가족의 기억까지 품어주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날의 《로엔그린》은 내게 단순한 한 번의 연주가 아니다.

 

평생 마음속에서 계속될 음악이다.

 

현장 영상|바이로이트의 잔디밭을 울린 바그너 《로엔그린》
 


지영순의 한 줄

“축제는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음악을 사랑해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과 그 순간을 함께한 삶까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음악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Soprano  디바돌체  지영순 교수 

  • 지영순 교수

    이화여대 성악과 졸 
    이탈리아 빠르나조아카데미아 졸 
    이탈리아 오페라하우제아카데미 아디플로마 
    러시아 쌍페떼르부르그음악원 디플로마 
    오페라 라보엠,카르멘,휘가로의 결혼 등 주역 출연 
    주성대,청주대,서원대,경기대대학원 강사 역임

    현, 뮤직라이프 대표,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소프라노 지영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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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순소프라노#바이로이트합창단#로엘그린#삼삼한음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