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김선향의 "유니폼"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90]
유니폼
김선향
획일화라니요
구별 짓고 싶어 안달인 당신의 욕망을
일찍이 간파했습죠
당신의 신분을 대번에 알려 드리렵니다
흰색 수단의 고귀함을 입은 교황님
검은색 권위를 입은 판사님
흰 가운만 보면 의사인 줄 알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들
소방대원인 주황색 유니폼
셰프의 상징인 모자
고귀하든 비천하든
유니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죠
축구를 할 때도 전투를 할 때도
응원할 때도 학위를 받을 때도
하이마트 앞에서 춤을 출 때도
새벽 거릴 청소할 때도 장거리 비행을 할 때도
호텔 프런트에서도 칵테일바에서도
심지어 포르노 비디오에서도
어린 여성들은 교복과 간호사복을 다 입더군요
글로벌한 유니폼의 세계
영원한 것은 해병이 아니라 유니폼이 아닐까 합니다만
ㅡ『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청색종이, 2025)

[해설]
세상에 깔려 있는 제복 입은 사람들
이 세상에는 제복을 입은 사람과 제복을 입지 않은 사람 딱 두 종류가 있다. 제복을 입고 있으면 권위를 확보하거나 집단의식을 표출할 수 있다. 서구의 법정에서는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법복을 갖춰 입음은 물론 가발까지 쓰고 나오게 했다. 더 전에는 남자의 수염이 권위를 상징하였다. ‘에헴!’ 하는 헛기침을 대신하는 것이 수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류안 님의 수염에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다. ㅎㅎ)
김선향 시인은 유니폼이 획일화가 아닌가? 타인과 구별 짓고 싶어 만들어낸 상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시종 거두지 않고 있다. 단체장들은 그런 게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획일화요 구별이라는 것이다. “당신의 신분을 대번에 알려 드리렵니다”란 시구가 바로 그것을 얘기하고 있다.
성직자, 재판관, 의사, 소방대원, 셰프가 입는 의복은 그것 자체가 이미 그가 가진 직업을 말해줌으로써 권위나 위엄을 확보하고 있다. 유니폼은 네 편과 내 편을 구분 짓는다. 말을 하는 사람과 말에 복종할 사람을 구분 짓는다. 갑과 을을 확실히 구분 짓는다. 군인과 민간인을 군복과 사복이 구분하는데 월맹군이 아닌 베트콩은 사복을 하고 있어서 베트남전에 뛰어든 미군들은 초기에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피해를 본 사람들은 민간인이었다. 한국전쟁 전에 제주도나 여수ㆍ순천, 10월 1일의 대구 등지에서 피해를 본 이들은 바로 민간인이었다. 적과 아(我)가 똑같이 생겼고 민간인 복장을 하고 있으니 ‘그들’은 ‘우리’를 ‘적’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편할 때가 많다. 나 이런 사람이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요 하고 말하지 않아도 유니폼만 입고 있으면 옷이 다 말해준다. 그런데 나쁜 경우, 포르노 여배우에게 교복이나 간호사복을 입히는 경우다. 인권유린이요 직업 모욕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이 있다. 해병대 출신은 아무리 연세가 높아도 꼭 해병대 복장을 하고 행사장에 나타나는데, 그 군복이 갖고 있는 권위에 자신을 맡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온통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면? 옷가게는 문을 닫을 것이다. 군인 1, 군인 2, 군인 3, 의사 1, 의사 2, 의사 3, 판사 1, 판사 2, 판사 3……. 인간은 사라지고 직업만 남을 것이다.
[김선향 시인]
200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여자의 정면』 『F등급 영화』 등이 있다. 오랫동안 여성 결혼이민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현재 국제법률경영대학원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문학 동인 ‘사월’에서 활동하였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