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33] 오인태의 " ‘ㄱ’의 힘" , 문봄의 "와글와글 자음 교실"
‘ㄱ’의 힘
오인태
뚝, 그치다
똑, 부러지다
쓱, 닦다
쏙, 내밀다
꾹, 닫다
꼭, 맞다
딱, 그만큼
―『나랑 같이 밥 먹을래?』(책고래, 2023)
와글와글 자음 교실
문봄
이응이 거울 앞에서
모자를 써
ㅎ
시옷도 모자챙을 돌리며
뽐을 내
ㅊ
미음은 샘이 나
뿔이 나
ㅂ
디귿이 두더지처럼 드르륵
뒷문 열고 나타나자
ㄷ
놀란 치읓, 딸꾹질이 나와
모자 방울이 툭
ㅈ
티읕이 방울을 주워
리을 옆구리 간지럼 태워
ㅌ
온몸을 뒤틀며 웃던 리을
방귀가 빠방 빠방
ㄹ
피읖은 얼굴을 찌푸리며
마스크를 써
ㅍ
키읔은 키득키득
책상을 치며 까불어
ㅋ
남이 무엇을 하든 말든
니은은 앉아서 책만 봐
ㄴ
기역은 말해 뭐해
고꾸라져 자느라 아무것도 몰라
ㄱ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출판그룹 상상, 2023)

[해설]
한글 공부의 재미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에 대해서는 이 땅의 학자들만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게 아니다. 외국의 언어학자들도 한글에 대해 연구를 해보고는 깜짝 놀란다고 한다. 15세기 전반기에 국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 학자들을 동원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인데 자음과 모음이 실제 입과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어졌으니 그 정교함에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ㅁ은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는 모양을,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ㅅ은 이의 모양을,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기막힌 일이 아닌가?
창원에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한참 하신 오인태 선생님은 ㄱ 받침을 가진 부사를 찾아보니까 뜻이 맺고 끊는 확실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 동시의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이 아닐까. ㄱ 받침이 들어가서 완성되는 부사인데 부사는 누구랑 함께 있어야 뜻이 완성된다. 울음을 뚝 그치다. 연필심이 똑 부러지다. 걸레를 갖고 쓱 닦다. 혀를 쏙 내밀다. 입을 꾹 닫다. 크기가 꼭 맞다. 딱 그만큼만 하다. ㄱ의 힘이 참 세다.
대학에서 독일어교육학을 공부한 문봄 시인은 한국어와 독일어를 비교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웃으면서 들어갔다 울면서 나오는 언어가 독어라고 했는데 한국어는 작게 웃으면서 들어갔다 크게 웃으면서 나오는 언어가 아닐까. 시인은 한글 자음을 갖고 온갖 실험을 다 해본다. 그런데 이 실험이 과학적인 실험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력에 의거한 엉뚱한 실험이다. 자음의 모양을 갖고 이 생각도 해보고 저 장난도 쳐본다. 그래서 시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10월 17일 엊그제, 사단법인 국제펜한국본부가 주최한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 나흘 행사를 잘 마쳤다. 이 대회에 참석한 국내 문인, 해외 교민 문인, 외국에서 온 유학생, 해외 학자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정말 자랑스러운 시간이었다. 이 땅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문학이 한글만큼만 자랑스러우면 얼마나 좋을까. 외래어와 신조어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을 사전 속으로 자꾸 몰아넣고 있는데 이 두 동시를 보니 기분이 확 좋아진다.
[오인태 시인]
진주교대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문학교육을 전공하여 논문 「어린이 시의 생성심리와 표현상의 특징」으로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녹두꽃》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 『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혼자 먹는 밥』『등 뒤의 사랑』『아버지의 집』『별을 의심하다』를 냈다. 2004년 《어린이문학》에 동시를 발표하면서 어린이문학을 시작해 동시집 『돌멩이가 따뜻해졌다』, 산문집 『시가 있는 밥상』 등을 냈다. 창원 남정초등학교 교장을 했고 ‘작은詩앗·채송화’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문봄 시인]
대학에서 독일어교육학을 공부했다. 2017년 《어린이와 문학》에 「백제의 미소」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2022년 제14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2024년 창원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