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AI 인문학 8] 고독사, 인공지능이 막을 수 있다
민생을 향한 AI 기술 제안서(2/5)
제도는 열려 있지만, 모두에게 쉬운 길은 아니다
복지 접근성과 신청의 간극
기초생활 보장제도, 긴급복지지원, 기초연금, 생계급여.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들이다. 준비된 제도는 많지만, 그 안에 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복지 정책은 '신청주의'를 전제로 한다. 제도의 형평성과 투명성을 위한 장치지만, 실직·질병·관계 단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접근의 벽이 된다. 제도가 감지하지 못한 삶은 단절을 거쳐 위기로 이어지기도 하고, 정작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도 있다. 일부 지자체와 기관은 생활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제도가 먼저 반응하는 구조를 실험 중이다(예: 한국전력과 80여 개 지자체의 고독사 예방 시스템).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복지가 ‘사고 이후’가 아니라 ‘사고 이전’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복지가 먼저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신청에서 감지로, 감지에서 반응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려면,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신청 중심의 방식으로는 위기를 사전에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복지는 위험 징후를 먼저 감지하고, 반응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술, 특히 인공지능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수많은 생활 데이터를 사람이 일일이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AI는 비정상적인 패턴이나 급격한 변화 같은 위기 신호를 자동으로 탐지(Change Point Detection, 시계열 데이터 기반 이상 탐지 알고리즘)할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의 흐름 속에서 미세한 이상을 포착하는 알고리즘은 사람이 놓치기 쉬운 신호를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AI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분석 가능한 데이터 기반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전기·수도·가스·통신 사용량 같은 생활 인프라 데이터, 주민등록과 같은 인구 행정 데이터, 건강보험공단의 의료 이용 정보,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이력 데이터 등은 그 기반이 된다. 이처럼 다양한 공공데이터가 융합될 때, AI는 더 정밀하게 위험 신호를 포착할 수 있다.
공공데이터는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관리된다는 점에서, AI 분석의 품질과 안전성을 높이는 토대가 된다. 복지 기술이 보다 정교해지려면, AI와 공공데이터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체계가 필수적이다.
복지가 도착하는 시간이 달라지면, 삶의 결말도 달라진다

위험을 먼저 알아채는 복지
AI가 감지하고, 사람이 반응하는 체계
2024년 울산 남구에서는 전기와 통신사용이 끊긴 세대를 이상 징후로 감지한 뒤, 복지 담당자가 현장을 확인해 쓰러진 노인을 구조한 사례가 있다. 복지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한국전력과 80여 개 지자체는 전력, 통신, 수도 등 생활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고독사 위험을 조기에 탐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감지 구조를 확장하려는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미래의 인공지능은 조기 감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반복되는 생활 패턴 속에서 변화의 흐름을 학습하고, 위기의 가능성을 예측해 대응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위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환경 자체를 조정하고, 사전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복지 구조가 사후 조치에서 예방 설계로 이동한다면, 보다 세밀하고 정교한 제도 운용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 모든 변화는, 개인의 존엄과 개인정보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정교한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고독사 예방 시스템이 일상처럼 작동하는 사회라면, 누군가의 위기를 놓치지 않고 반응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사회가 개인의 삶을 진심으로 마주본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공동체의 이유가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면, 복지의 방향은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는 사회적 의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인, 칼럼니스트, IT AI 연구원 , KAN 전문기자
(주)데이터포털에서 빅데이터시각화팀장으로서 데이터 시각화와 AI 기술을 활용해 공공데이터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음.
시인과 컬럼니스트로도 활동하며, 문학과 데이터 과학을 접목하여 AI 플랫폼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