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04] 심금섭의 "문산호에서"
문산호*에서
심금섭
칠흑 태풍 헤쳐도 쓰러지는 학도병들
그날의 처참한 영상 마주 서 바라보며
피 튀긴 치열한 현장 생각 붉히며 따라간다
구국救國이 뭔지 모른 채 물결을 거슬러도
풍랑은 각개전투 서로를 떼어놓는데
이름만 남은 기록들 다시 벌떡 일어선다
눈시울 크렁한 화면 담담히 되돌려도
몰아치는 총포 소리에 소름만 오싹 돋고
애꿎은 눈물 바람에 갑판만 녹이 슨다
*한국전쟁 때 장사리 상륙작전을 펼치던 군함. 희생된 학도병 기록이 있다.
―『겨울 담쟁이』(목언예원, 2025)

[해설]
포항 죽도시장에서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30〜40분 올라가면 영덕군 남정면 동해대로 장사해수욕장 야영지에 문산호가 정박해 있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바다 위에 건립한 호국전시관으로, 기념관은 장사상륙작전 당시 실제로 투입된 문산호를 복원해 만들었다.
시인은 2020년에 전승기념관으로 탈바꿈한 문산호에 승선해 돌아보며 착잡한, 아니 참담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문산호는 미국 인디애나주 제퍼슨빌 선박회사가 설계한 전차 상륙함이었다. 좌초 후 거의 47년이 지난 1997년 3월 6일 장사동 해안에서 해병수색대원에 의해 바닷속에 묻힌 문산호가 발견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문산호는 대한민국 해군에 동원되었다. 6월 26일 해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묵호경비부 대원들을 포항으로 철수시켰으며, 6월 29일에는 묵호경비부 대원들을 다시 묵호로 복귀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1950년 7월 27일 해군본부로부터 육군 이응준 장군이 지휘하는 병력을 철수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여수로 출동했다. 당시 문산호는 북항 부두에 대기 중이었으며, 적의 총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부두에 계류한 채 적들과 교전을 벌였다. 이후 육군 병력 600여 명과 차량 30여 대를 성공적으로 철수시켜 진해로 이동시켰다.
1950년 9월 14일, 문산호는 경북 영덕 장사동 해안에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 병력을 상륙시키는 작전에 참여했다. 841명의 병력을 태우고 부산항을 출발한 문산호는 미군 함정의 안내를 받아 9월 15일 새벽 5시 장사동 근해에 도착했다. 상륙부대는 적의 집중 공격 속에서도 상륙을 완료했으나 태풍으로 인한 거센 풍랑으로 인해 해안에 좌초되었다. 이 과정에서 선장 황재중과 선원 10명이 전사했으며, 이들의 공로를 기려 정부는 황재중 선장에게 충무무공훈장을, 10명의 선원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처는 1950년 9월 경북 영덕 장사동 해안에서 태풍 속에서 장사상륙작전 임무를 수행한 전차 상륙함 ‘문산호’를 ‘9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기념관은 5층으로 이뤄졌다. 1층에서는 장사상륙작전의 배경과 출동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2층은 상륙작전의 전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조형물 등으로 꾸며졌다. 3층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휴게 공간, 4층은 학도병의 교복 등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5층은 문산호의 갑판으로 장사해수욕장 등 주변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시조가 아직도 회고지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음풍농월을 일삼는 경우가 있는데 심금섭 시조시인의 이 작품은 우리의 약해진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시인이 이렇게 운을 떼니, 역사 공부를 하게 되었다. 포항에 가면 꼭 들를 곳이 생겼다.
[심금섭 시조시인]
경북 포항 출생. 2007년 《문예운동》 시 등단. 2019년 《시조21》 신인상 수상. 오누이시조 신인상, 매일시니어문학상 수상.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