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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정혜선의 "아들놈"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정혜선의 "아들놈"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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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87]

아들놈

 

정혜선

 

무슨 꿍꿍이인지

아들놈은 철도 없이

세상 다 자기 것인 줄 알고

노쇠해 가는 장맛비의 끝자락에는

각박한 삶이란 아무도 알아줄 일 없는

고지서의 쾌쾌한 곰팡내가 난다

 

월사금 가져가는 아들놈의 뒤통수가

수박의 금빛 줄무늬로 번쩍이는

하루살이에겐 아뿔싸 재테크란

수박 꼬리나 물고 빠는

새까만 파리의 날갯짓 모양이 난다

 

채 가는 냉큼한 아들의 신발 꽁무니가

줄행랑의 손사래를 친다

물끄러미한 꼬리마냥 멍하니 있자니

언젠가 아버지의 한숨 같은 담배 연기가 스쳐간다

 

대를 잇는 가난의 영광이란

찌그러진 캔의

누렇게 배인 기름기마냥

끈덕지고 지리하여

십리 밖 마누라처럼 미끄덩거렸다

 

담번 중간고사 그리고 학기말 경시대회

그도 아니면 사생대회에

기대의 삽질을 떠볼 생각이다

애비도 아들내미도 살아야겠기에

희망은 쌀의 흰빛과 다름아니기에

 

—『님께 바친 인어의 꼬리』(인문학사, 2025)

  

아들놈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아들이 아니라 아들놈이여

 

   지금 20대나 30대 초반의 아들 중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씩씩하게 자기 앞길을 헤쳐나가는 이가 몇 퍼센트나 될까? 많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의 부모 의존도는 점점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부모도 죽을 노릇이다. 위로는 어르신네들을 모시고, 밑으로는 자식새끼들을 건사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좋으련만 손녀 손자까지 봐줘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아들놈은 철도 없이 세상이 다 제 것인 줄 안다. 아버지에게 월사금 가져가는 아들놈의 뒤통수가 크게 보였을 테니, 미칠 노릇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용돈을 찔러줄 줄 알 만큼 여유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채 가는 냉큼한 아들의 신발 꽁무니가/줄행랑의 손사래를 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들은 가져갈 줄만 알지 제가 사물에 달려들어 쟁취하거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이 시에 나오는 아들은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경시대회나 사생대회에 참가해 입상해볼 꿈을 키우고 있다. 아직 미성년자이지만 화려한 입상 타이틀이 없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아들놈은 내가 잡은 물고기를 요리해 먹을 것인가, 팔 것인가.

 

   그래도 시인은 아버지와 아들의 팀워크를 생각해 마음을 돌리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중간고사까지만 어떻게 버텨보면 또 대회에 나가 입상할 수도 있으리라. 공부만이 전부가 아닐 테지. 불쌍한 아버지 세대여. 고무줄놀이하던 아이들은 영 안 보이고 이 세상을 어떻게든 좋게 보려는 아버지가 보인다. 희망은 쌀의 흰빛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잃지 말아야 한다. 아들놈이 아무리 괘씸해도.

 

  [정혜선 시인]

 

  홍익대학교 졸업. 영국의 St.Andrews University 수학. 전 중등교사, 사진작가. 2004년 《월간시인》 제7회 신인상 시 당선. 사진집 『하얀 그림』『회색편지』『빨간 필통』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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