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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 공다원의 '우리는 사람이고 싶어요"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 공다원의 '우리는 사람이고 싶어요"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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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29]

 

우리는 사람이고 싶어요

 

공다원

 

시청 입구에 현수막이 걸린다.

그 아래 비닐을 덮은 사람이 눕는다.

 

상체만 살아 있는 사람이 누워 단식을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김장 배추를 덮어 놓은 듯 보이기도 한다.

 

그 위에 흰눈이 쌓인다.

눈발은 점점 거세지고

한쪽 팔이 없는 이가 그것들을 자꾸자꾸 쓸어낸다.

 

고마운 아침 햇살이 비닐 속 반쪽 사람을 찾아온다.

 

시체처럼 누워 있던 반쪽 사람이 가만히 눈을 뜬다

천천히 전동 휠체어 탄 여인 하나 생수병을 비닐 속으로 들이민다.

비닐 속 반쪽 사람은 한 모금 입술을 적시고 놓아버린다.

 

또 밤이 찾아오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비닐을 들썩인다.

앞을 못 보는 사람 하나 지팡이를 짚고 와 뜨거운 물병을 비닐 속으로 들이민다.

비닐 속 반쪽 사람은 그것을 가만히 가슴에 품는다.

 

시청 공무원들은 짜증이 묻은 얼굴에 커피를 나눠 마시고 교대를 한다

시장실 안락한 의자 위에서 시장은 저녁 모임 약속을 한다.

 

단식 20, 비닐 속 반쪽 사람은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둘러선 온갖 장애인들은 비닐 위에 눈물방울을 떨군다.

 

눈물은 한 서린 인간비가 되어 비닐 위로 뚝뚝 떨어진다.

 

ㅡ『기울지 않는 조각배』(개미, 2013)

 
 

한국 사람으로 시청 입구에 현수막이 걸린다. 그 아래 비닐을 덮은 사람이 눕는다. 상체만 살아 있는 사람이 누워 단식을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김장 배추들이 덮어 놓은 듯 보이기도 한다. 그 위에 흰눈이 쌓인다. 눈발은 점점 거세지고 한쪽 팔이 없는 이가 그것들을 자꾸자꾸 쓸어낸다. 고마운 아침 햇살이 비닐 속 반쪽 사람을 찾아온다. 시체처럼 누워 있던 반쪽 사람이 가만히 눈을 뜬다 천천히 전동 휠체어 탄 여인 하나 생수병을 비닐 속으로 들이민다. 비닐 속 반쪽 사람은 한 모금 입술을 적시고 놓아버린다. 또 밤이 찾아오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비닐을 들썩인다. 앞을 못 보는 사람 하나 지팡이를 짚고 와 뜨거운 물병을 비닐 속으로 들이민다. 비닐 속 반쪽 사람은 그것을 가만히 가슴에 품는다. 시청 공무원들은 짜증이 묻은 얼굴에 커피를 나눠 마시고 교대를 한다 시장실 안락한 의자 위에서 시장은 저녁 모임 약속을 한다. 단식 20일, 비닐 속 반쪽 사람은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둘러선 온갖 장애인들은 비닐 위에 눈물방울을 떨군다. 눈물은 한 서린 인간비가 되어 비닐 위로 뚝뚝 떨어진다.

  [해설]
 

  작년 3월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마평동에 위치한 가온누리평생학교에서 교장 이ㆍ취임식이 열렸다. 공다원 교장 선생님이 물러나고 이 학교의 태권도 강사였던 강창식 선생이 신임교장으로 취임하는 행사가 20여명 학생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것이다. 공다원 씨가 사비를 들여 20104월에 개교한 가온누리평생학교를 14년 동안 끌고 온 노고에 마음에서 우러난 박수를 보낸다.

 

  시청 입구에 현수막이 걸리고 그 아래 비닐을 덮은 사람이 누워 단식을 시작한다. 그는 중증의 장애인으로, 상체만 살아 있다. 눈이 와 이 사람 위에도 눈이 쌓인다. 그러니까 한쪽 팔이 없는 장애인이 다른 쪽 팔을 이용해 시위자의 몸에 쌓이는 눈을 쓸어낸다. “또 밤이 찾아오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비닐을 들썩이는데, 이번에는 앞을 못 보는 사람 하나가 뜨거운 물병을 비닐 속으로 들이민다. 장애인들의 권익을 위해 저렇게 단식투쟁하는 이를 위해 장애인들이 응원해주고 있다.

 

  20일째가 되도록 단식하는 사람에게 관심 갖는 이는 장애인뿐이다. 시장도 시청 공무원들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반쪽이 된 단식 농성자는 의식이 흐려져 간다. 둘러선 온갖 장애인들이 비닐 위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데서 시가 끝난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애로사항을 모르고 있는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이 시의 주제일 터이다.

 

  간혹 장애인의 시위가 언론에 보도될 때, 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출근길에 방해가 되고, 생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애인을 만나게 되면 경계심을 갖고서 뒷걸음질을 하곤 했다. 그런데 아주 가까운 일가가 후천적인 이유로 정신신경과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큰 충격을 몇 번 받으면 장애가 없이 살다가도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가는 학교의 5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이 건물이 세워진 지 40년 만의 일이었다. 장장 40년 동안 지체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누군가에게 업혀서 강의실에 가야만 했던 것이다.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고민하였다.

 

  2019년에 아는 교수들과 문학과장애학회를 만들었다.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문학인이 장애인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문학 속에 장애인 차별은 없는 것일까, 장애인의 창작문학은 어떤 내용일까, 드라마와 영화 속에 장애인 차별은 없는 것일까,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뭐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단체의 역사가 올해로 7년째로 접어든다. 가을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

 

    [공다원 시인]

 

시각장애인인 공다원 시인은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을 취득해 한경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가온누리평생학교의 교장과 용인중앙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소장을 했다. 2013년에 첫 시집 『기울지 않는 조각배』를, 2019년에 두 번째 시집 『꺼지지 않는 촛불』을, 2021년에 세 번째 시집 『잦아들지 않은 설움』을 펴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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