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 공다원의 '우리는 사람이고 싶어요"
우리는 사람이고 싶어요
공다원
시청 입구에 현수막이 걸린다.
그 아래 비닐을 덮은 사람이 눕는다.
상체만 살아 있는 사람이 누워 단식을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김장 배추를 덮어 놓은 듯 보이기도 한다.
그 위에 흰눈이 쌓인다.
눈발은 점점 거세지고
한쪽 팔이 없는 이가 그것들을 자꾸자꾸 쓸어낸다.
고마운 아침 햇살이 비닐 속 반쪽 사람을 찾아온다.
시체처럼 누워 있던 반쪽 사람이 가만히 눈을 뜬다
천천히 전동 휠체어 탄 여인 하나 생수병을 비닐 속으로 들이민다.
비닐 속 반쪽 사람은 한 모금 입술을 적시고 놓아버린다.
또 밤이 찾아오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비닐을 들썩인다.
앞을 못 보는 사람 하나 지팡이를 짚고 와 뜨거운 물병을 비닐 속으로 들이민다.
비닐 속 반쪽 사람은 그것을 가만히 가슴에 품는다.
시청 공무원들은 짜증이 묻은 얼굴에 커피를 나눠 마시고 교대를 한다
시장실 안락한 의자 위에서 시장은 저녁 모임 약속을 한다.
단식 20일, 비닐 속 반쪽 사람은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둘러선 온갖 장애인들은 비닐 위에 눈물방울을 떨군다.
눈물은 한 서린 인간비가 되어 비닐 위로 뚝뚝 떨어진다.
ㅡ『기울지 않는 조각배』(개미, 2013)

[해설]
작년 3월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마평동에 위치한 가온누리평생학교에서 교장 이ㆍ취임식이 열렸다. 공다원 교장 선생님이 물러나고 이 학교의 태권도 강사였던 강창식 선생이 신임교장으로 취임하는 행사가 20여명 학생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것이다. 공다원 씨가 사비를 들여 2010년 4월에 개교한 가온누리평생학교를 14년 동안 끌고 온 노고에 마음에서 우러난 박수를 보낸다.
시청 입구에 현수막이 걸리고 그 아래 비닐을 덮은 사람이 누워 단식을 시작한다. 그는 중증의 장애인으로, 상체만 살아 있다. 눈이 와 이 사람 위에도 눈이 쌓인다. 그러니까 한쪽 팔이 없는 장애인이 다른 쪽 팔을 이용해 시위자의 몸에 쌓이는 눈을 쓸어낸다. “또 밤이 찾아오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비닐을 들썩이”는데, 이번에는 “앞을 못 보는 사람 하나”가 뜨거운 물병을 비닐 속으로 들이민다. 장애인들의 권익을 위해 저렇게 단식투쟁하는 이를 위해 장애인들이 응원해주고 있다.
20일째가 되도록 단식하는 사람에게 관심 갖는 이는 장애인뿐이다. 시장도 시청 공무원들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반쪽이 된 단식 농성자는 의식이 흐려져 간다. 둘러선 온갖 장애인들이 비닐 위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데서 시가 끝난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애로사항을 모르고 있는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이 시의 주제일 터이다.
간혹 장애인의 시위가 언론에 보도될 때, 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출근길에 방해가 되고, 생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애인을 만나게 되면 경계심을 갖고서 뒷걸음질을 하곤 했다. 그런데 아주 가까운 일가가 후천적인 이유로 정신신경과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큰 충격을 몇 번 받으면 장애가 없이 살다가도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가는 학교의 5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이 건물이 세워진 지 40년 만의 일이었다. 장장 40년 동안 지체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누군가에게 업혀서 강의실에 가야만 했던 것이다.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고민하였다.
2019년에 아는 교수들과 ‘문학과장애학회’를 만들었다.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문학인이 장애인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문학 속에 장애인 차별은 없는 것일까, 장애인의 창작문학은 어떤 내용일까, 드라마와 영화 속에 장애인 차별은 없는 것일까,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뭐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단체의 역사가 올해로 7년째로 접어든다. 가을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
[공다원 시인]
시각장애인인 공다원 시인은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을 취득해 한경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가온누리평생학교의 교장과 용인중앙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소장을 했다. 2013년에 첫 시집 『기울지 않는 조각배』를, 2019년에 두 번째 시집 『꺼지지 않는 촛불』을, 2021년에 세 번째 시집 『잦아들지 않은 설움』을 펴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