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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동시대 미술의 ‘조건과 변형’을 묻다… YOD Gallery 도쿄서 《UNCONDITIONAL》 개최

임만택 전문 기자
입력
필리핀 작가 13인 참여…9월 9일부터 10월 3일까지 기억·시간·재료·문화·일상을 둘러싼 ‘조건’과 그 변화의 과정 탐구 E.S.L Chen, Jing 등 서로 다른 세대와 매체의 작업 한자리에 필리핀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그룹전

 《UNCONDITIONAL》이 일본 도쿄 텐노즈의 YOD Gallery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2026년 9월 9일부터 10월 3일까지 진행되며, 필리핀 현대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서로 다른 세대와 작업 배경의 작가 13명이 참여한다. 

《UNCONDITIONAL》 전시 전경 / 사진=YOD Gallery 제공

전시 제목인 ‘UNCONDITIONAL’은 단순히 어떠한 조건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의미하기보다, 인간의 삶과 예술을 둘러싼 수많은 조건이 어떻게 작품을 형성하고 다시 다른 형태로 변환시키는지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무조건’이 아닌, 조건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

 

이번 전시는 사고와 기억, 시간, 재료, 문화, 일상 등 인간의 경험을 구성하는 여러 ‘조건’을 중심에 둔다.

《UNCONDITIONAL》 전시 전경 / 사진=YOD Gallery 제공

작품들은 이러한 조건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과 사회를 둘러싼 여러 요소들이 작품의 형태와 의미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그 조건을 통과하면서 또 다른 이미지와 이야기로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전시가 제시하는 ‘UNCONDITIONAL’은 결국 조건의 부재라기보다 조건과 조건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변형에 가까운 개념이다.

 

작가들은 이를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과거와 현재, 개인의 경험과 문화·역사 사이의 관계를 각자의 조형언어로 풀어낸다.

 

일상의 재료와 기억이 새로운 이미지로

 

참여 작가들의 작업 방식도 다양하다.

《UNCONDITIONAL》 전시 전경 / 사진=YOD Gallery 제공

일상적인 재료를 새로운 형태로 변환하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 익숙한 이미지와 모티프를 기존 맥락에서 떼어내 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옮겨놓는 작업도 등장한다.

 

기존 미술 장르를 새롭게 해석하거나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신화와 은유로 전환하는 방식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13인의 작가들은 서로 다른 매체와 접근법을 통해 일상 속에 내재한 변화의 힘과 그 안에 축적된 시간, 기억을 탐색한다.

 

전시는 하나의 통일된 답을 제시하기보다, 동일한 ‘조건’이라는 주제가 서로 다른 개인의 경험과 문화적 배경을 거쳐 얼마나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UNCONDITIONAL》 전시 전경 / 사진=YOD Gallery 제공

E.S.L Chen, 인물의 형상을 해체하고 다시 바라보다

 

참여 작가 E.S.L Chen은 2026년 제작한 ‘Explored Head Ⅰ’, ‘Explored Head Ⅱ’, ‘Explored Head Ⅲ’를 선보인다.

 

리넨 위에 유채와 아크릴, 목탄을 사용한 이 작품들은 인물의 머리와 얼굴이라는 익숙한 대상을 탐색의 대상으로 전환한다. 전통적인 초상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인물의 외형과 내면, 기억과 감각을 분절하고 다시 구성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며, ‘보이는 얼굴’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심리적·감각적 층위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UNCONDITIONAL》 전시 전경 / 사진=YOD Gallery 제공

Jing, 카피즈 조개 위에 새겨진 ‘Multo’

 

Jing은 ‘Multo’를 선보인다.

 

2026년 제작된 이 작품은 카피즈 조개(capiz shells) 위에 사진 이미지를 전사한 작업이다. 작은 조개 조각 하나하나에 이미지가 자리 잡으면서 사진이라는 기록 매체와 자연재료가 서로 다른 물성과 시간을 공유한다. ‘Multo’는 필리핀어로 ‘유령’을 의미하는 단어로 읽힐 수 있으며, 작품은 사라진 존재와 남겨진 흔적, 기억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환기한다.

 

사진이라는 과거의 기록과 카피즈라는 물질적 재료가 결합하면서, 기억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다시 출현하고 변형되는 존재로 제시된다.

 

필리핀 동시대 미술의 서로 다른 세대가 한자리에

 

이번 전시에는 HR Campos III, E.S.L Chen, Sean Go, Summer De Guia, Patrick De Veyra, Martin Honasan, Jing, Isadore Lerio, Nara Marin, Jason Montinola, Victoria Montinola, R.A. Tijing, Zuh Dai 등 총 13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UNCONDITIONAL》 전시 전경 / 사진=YOD Gallery 제공

한 국가의 동시대 미술을 특정한 형식이나 세대로 단순화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연령대와 작업 방식, 매체를 함께 배치함으로써 현재 필리핀 미술이 보여주는 다층적인 흐름을 조망한다.

 

각각의 작품은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하면서도 문화, 역사, 물질, 사회적 기억과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것’은 더 넓은 집단적 경험과 만나고, 익숙한 일상의 사물과 기억은 새로운 예술적 언어로 변화한다.

 

도쿄 텐노즈에서 만나는 필리핀 현대미술

 

전시가 열리는 YOD Gallery는 도쿄 시나가와구 텐노즈 지역의 TERRADA ART COMPLEXⅡ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YOD Gallery 제공

《UNCONDITIONAL》은 필리핀 현대미술을 단순히 지역적 범주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삶을 형성하는 조건과 그 조건 안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개인의 기억과 문화, 역사에 대해 질문하는 전시다.

 

서로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무조건적’이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얼마나 많은 조건과 관계 위에서 성립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전시는 필리핀이라는 지역적 배경을 넘어 동시대의 삶과 예술에 대한 보다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전시 개요

전시명: 《UNCONDITIONAL》
형식: 그룹전
기간: 2026년 9월 9일(수)~10월 3일(토)
참여작가: HR Campos III, E.S.L Chen, Sean Go, Summer De Guia, Patrick De Veyra, Martin Honasan, Jing, Isadore Lerio, Nara Marin, Jason Montinola, Victoria Montinola, R.A. Tijing, Zuh Dai
관람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6시 30분
휴관: 일요일, 월요일
장소: YOD Gallery
주소: 2F TERRADA ART COMPLEXⅡ, 1-32-8 Higashi-Shinagawa, Shinagawa-ku, Tokyo 140-0002, Japan
문의: +81(0)3-6674-5086 / [email protected]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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