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시 해설] 고경옥의 "그리운 고스톱"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고경옥의 "그리운 고스톱"

이승하 시인
입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69]  

그리운 고스톱

 

고경옥

 

명절이면 시집, 장가 간 삼남매 모두 모여

엄마 옆에 동그랗게 앉아

고스톱을 치던 때가 있었다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듯

화투 패를 반듯하게 나누던 밤

엄마, 남동생, 신랑 그리고 뭣도 모르면서

광이나 피를 팔려고 끼는 초짜가

최대한 심오하게 불을 지피던 시절이다

 

어머니 똥 싸셨어요

자네 죽었구먼

넌 피박이야

 

언뜻 들으면 살벌하고 버릇없는 말들이지만

그저 재미있고 우스워서

까르르 방바닥을 두드리며 웃었다

생밤보다 하얗게 윤기 나던

되돌리고 싶은 그 밤,

손맛 듬뿍 밴 감주와

따뜻하게 데운 전을 연신 내오던

작은올케도 마냥 푸르렀었다

 

동백나무 꽃을 살피러

베란다를 오가며 빙글 웃으시던 아버지는

먼 하늘나라 몇 번지에서 여전히

꽃들에게 물 주고 계실 테고

구순이 넘은 엄마는 이제

그 좋아하던 고스톱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깨를 기울이고 둥글게 앉아

빠진 배꼽 잊은 채 웃는 모습들을 떠올리자

베란다를 오가던 아버지 발걸음 소리가

풍경소리처럼 댕강 귓가로 스민다

 

―『눈 내리는 오후엔 너를 읽는다』(천년의시작, 2024)

 

그리운 고스톱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 

[해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낳아주고 키워주어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드리는 날이라고 알려져 있다. 경로효친사상 덕분에 제정된 날 같지만 1956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실시될 때는 미국의 Mother’s Day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드리는데 미국은 이런 풍습이 없어졌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어머니의 날(5월 둘째 주 일요일)과 아버지의 날(6월 셋째 주 일요일)이 따로 있다. 하얀 카네이션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뜻이고 노란 카네이션은 경멸, 실망, 이의제기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으니 잘못 선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고경옥 시인은 옛날 일을 회상한다. 명절만 되면 시집, 장가 간 3남매와 그들의 남편과 아내까지 가세해 고스톱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모양이다. 어머니 똥 싸셨어요. 자네 죽었구먼. 넌 피박이야. 고스톱 용어로 쓰리고, 따따블, 쌍피, 싹쓸이, 광박, 폭탄, 흔든다……. 온갖 게 다 있다. 작은올케는 주전부리를 연신 내오는데 아버지는 고스톱에 참여하지 않고 베란다 쪽에 왔다 갔다 하신다. 고스톱도 잘 못하고, 어색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고스톱의 복잡한 규칙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 즐거웠던 명절 풍경을 재현할 수 없다. 그 시절을 추억할 수밖에 없어서 오히려 마음이 착잡해질 것이다. 정철의 시조가 불변의 진리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파 어찌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찾아뵙거나 전화상으로건 따뜻한 말 몇 마디만큼 큰 효도가 어디 있으랴. 부모 자식 간에 따뜻한 정담이 오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고경옥 시인]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으며 2010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안녕, 프로메테우스』『서랍 속에 눕다』『오후 여섯 시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출간하였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share-band
밴드
URL복사
#고스톱#이승하시인#시해설#코리아아트뉴스#고경옥시인#그리운고스톱#하루에시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