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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규 칼럼] 기술은 누구의 편인가: 권력과 감시의 역사

조선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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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제국의 친구인가, 배신자인가?”라는 질문에 역사적 답을 하자면, 기술은 제국이 자신을 확장할 때 가장 충실한 친구였고, 그 기술이 다른 행위자들에게 확산되고 새로운 질서를 낳는 순간, 이전 제국을 배신하는 냉혹한 촉매제였습니다.


역사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인류 문명의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마다 반드시 하나의 공통 변수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술입니다. 기술은 제국을 낳았고, 제국은 기술을 키웠습니다. 역사를 가로지르는 가장 강력한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것일 것입니다. 어떤 제국도 자신이 발명한 기술의 독점을 영원히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이 명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19세기 영국입니다. 1769년 제임스 와트가 분리 응축기를 장착한 개량 증기기관의 특허를 취득했을 때, 그것은 한 기업가의 발명이 아니라 세계 권력 지형을 재편할 충격파의 시작이었습니다. 증기기관은 방직 공장의 노동 생산성을 종전의 20~40배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1830년 세계 최초의 여객 철도인 리버풀-맨체스터 노선이 개통되면서 내륙 물류의 속도와 비용 구조가 근본부터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1850년대 영국은 전 세계 공산품의 약 40%를 단독으로 생산하고, 전 세계 석탄의 절반을 캐냈으며, 전 세계 선박의 절반을 건조하는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했습니다.

기술은 제국의 친구인가, 배신자인가?”라는 질문에 역사적 답을 하자면, 기술은 제국이 자신을 확장할 때 가장 충실한 친구였고, 그 기술이 다른 행위자들에게 확산되고 새로운 질서를 낳는 순간, 이전 제국을 배신하는 냉혹한 촉매제였다


그러나 경제사학자 데이비드 랜즈가 그의 역작, 국가의 부와 빈곤 에서 날카롭게 분석했듯이, 기술의 확산은 막을 수 없는 중력처럼 작동합니다. 1870년 이후 독일 제2제국은 베를린공과대학을 필두로 한 체계적인 공학 교육 시스템과, 크루프 같은 거대 산업 자본, 그리고 은행과 산업을 긴밀히 결합한 '조직 자본주의를 통해 영국의 기술을 단순히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재창조하기 시작했습니다. 화학,전기, 광학 분야에서 독일은 영국을 압도했고, 미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과 이민자 노동력을 기반으로 철강·석유·자동차 산업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1870년 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영국의 비중은 31.8%였지만, 1913년에는 13.6%로 반 토막이 났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비중은 23.3%에서 35.8%로, 독일은 13.2%에서 14.8%로 상승했습니다.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 에서 이 역학을 제국의 과잉 확장과 성장률의 불균등 발전'이라는 두 개념으로 정밀하게 해부했습니다. 강대국의 위기는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기술과 생산성 격차가 누적되어 어느 순간 군사·경제적 우위가 역전되는 순간에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교훈은 이것입니다. 기술을 발명한 나라가 아니라, 그것을 사회 제도·교육·금융 구조와 통합하여 확산시킨 나라가 패권의 최후 주인이 됩니다. 기술은 제국의 근육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근육을 경쟁자에게 이식하는 바이러스이기도 합니다.


철도에서 핵으로, 핵에서 AI로, 전쟁이 진화하는 방식입니다. 기술과 권력의 관계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은 전쟁터였습니다. 전쟁은 기술의 최고 소비자인 동시에, 기술 혁신을 가장 강하게 추동하는 압력 장치였습니다.


1866년 쾨니히그레츠 전투를 돌이켜 보겠습니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전쟁의 분수령이 된 이 전투에서 프로이센 총참모장 헬무트 폰 몰트케는 역사상 최초로 철도를 전략 병기로 조직적으로 운용했습니다. 프로이센은 5개 노선의 철도망을 통해 단 7일 만에 25만 명의 병력을 전선에 집결시켰습니다. 반면 오스트리아는 1개 노선에 의존해 같은 병력을 이동시키는 데 45일 이상이 걸렸습니다. 전쟁은 개전 7주 만에 결판났습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도 이 패턴은 반복되었습니다.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군 33만 명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집결하는 동안, 프로이센군은 철도를 통해 38만 명을 신속히 전선에 배치하고 보급까지 실시간으로 유지했습니다.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병사의 용맹함이 아니라, 산업 기술을 군사 물류 체계에 통합한 능력의 차이였습니다.


20세기는 이 패턴을 더욱 가공할 규모로 확장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기관총 한 정은 시간당 400~600발을 발사하며 보병 중대 전체를 수초 안에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술이 양측 모두에게 보급되자 전쟁은 참호전의 소모전으로 변질되었고, 4년간 900만 명의 군인과 700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탱크·무선통신·항공기가 결합한 전격전이 등장했고, 연합군은 레이더·암호 해독(Enigma 해독)·원자폭탄이라는 기술의 우위로 전쟁을 종결시켰습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두 발의 원자폭탄은 단 72시간 만에 히로시마에서 약 14만 명, 나가사키에서 약 7만 명을 앗아가며 전쟁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전쟁은 더 이상 전투원 간의 충돌이 아니라, 도시와 사회 전체를 순식간에 절멸시킬 수 있는 '총력전'이 된 것입니다.


핵 억지의 논리, 즉 상호확증파괴는 역설적으로 강대국 간의 직접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 균형은 기술의 도덕화가 아니라, 기술의 공포를 통한 일종의 잠정적 평화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핵 이후 또 하나의 기술적 변곡점 앞에 서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미국 국방부는 2018년 '합동인공지능센터(JAIC)'를 설립했고, 중국 인민해방군은 2017년 발표한 신세대 AI 개발 계획'에서 2030년까지 AI 군사 분야 세계 1위를 목표로 천명했습니다. 이 경쟁의 구체적 현실은 이미 전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4년 이스라엘의 독립 탐사 매체 972 매거진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 정보기관은 가자 전쟁에서 라벤더 라는 AI 타겟팅 시스템을 운용했으며, 이 시스템은 약 3만 7,000명을 잠재적 공격 표적으로 자동 분류했습니다. 군 내부 증언에 따르면 이 목록은 인간의 실질적인 재검토 없이 사실상 그대로 실행에 옮겨졌고, '민간인 피해 허용 비율은 알고리즘이 계산하는 통계적 확률로 환산되었습니다. 전쟁은 이제 인간의 분노, 두려움, 윤리적 양심이 작동하는 공간에서, 확률과 효율을 계산하는 알고리즘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내부를 향할 때, 관리 국가와 민주주의의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이 기술 혁신을 강제한다면, 평화의 시간은 그 기술이 반드시 내부를 향해 돌아서는 시간이었습니다. 역사는 이 패턴 역시 반복적으로 증명해 왔습니다.


1933년 나치 독일은 집권 직후 인구 조사와 유대인 식별에 IBM의 홀러리스 펀치카드 시스템을 활용했습니다. 저널리스트 에드윈 블랙은 2001년 저서 IBM과 홀로코스트 에서 이 기술이 단순한 인구 행정 도구가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위한 체계적 분류와 추적의 인프라였음을 방대한 문서를 통해 밝혔습니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권력의 의도와 결합할 때, 기술은 폭력의 정밀도를 극도로 높이는 도구가 됩니다.


냉전 시기의 사례도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소련과의 정보전을 명분으로 개발한 대규모 통신 감청 기술 'PRISM' 프로그램을 자국 시민과 동맹국에도 적용했습니다. 2013년 전직 NS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드러난 이 사실은, NSA가 구글·애플·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 9개 IT 기업의 서버에 직접 접근해 수십억 건의 통신 데이터를 수집해 왔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 의회가 통과시킨 애국자법은 영장 없는 감청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을 포함했으며, 이 조항은 2015년 일부 개정될 때까지 14년간 유지되었습니다. 위기를 명분으로 확장된 국가 권한이 위기 종료 후에도 반납되지 않는 비가역적 팽창의 패턴이 여기서도 작동했습니다.


오늘날 AI와 빅데이터의 결합은 이 감시 능력을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중국의 사회신용시스템은 개인의 금융 이력, 법원 기록, 교통법규 위반, 온라인 발언, 사회관계망을 종합 분석해 신용 점수를 산정하고, 2018년 한 해에만 이 시스템을 통해 1,750만 명이 항공권 구매를, 550만 명이 고속철도 이용을 제한당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권위주의 국가만의 문제일까요? 미국 ACLU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아마존의 안면인식 AI 'Rekognition'은 미국 의회 의원 28명을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와 잘못 매칭했으며, 오류의 39%가 유색 인종에 집중되었습니다. 영국 런던은 100만 대 이상의 CCTV를 운용하며, 2020년 런던 경찰청이 시험 운용한 실시간 안면인식 시스템은 80%에 달하는 오탐지율을 기록하면서도 도입이 강행되었습니다.


사회학자 쇼샤나 주보프는 감시 자본주의 시대 에서 이 현상의 본질을 꿰뚫었습니다. 디지털 감시의 가장 정교한 효과는 폭력이 아니라 '순응의 생산'이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라이언이 감시 사회로 개념화한 것처럼, 감시는 시민이 자신이 관찰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스스로 발언을 검열하고, 집회를 주저하며, 비주류 의견 표출을 포기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사회를 재형성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총구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편리함과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 조금씩 자발적으로 해체되어 가는 메커니즘입니다. 선거와 의회는 형식적으로 존속하지만, 실질적 정치 공간과 상상력은 이미 관리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보는 눈은, 결국 지금 여기에서 다른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역사를 '보는 것'이 곧 선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역사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먼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역사에는 기술과 권력의 결합을 제어하려는 반대의 흐름도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1972년 미국 의회는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계기로 처치 위원회를 구성해 CIA·FBI의 불법 감청과 공작 활동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1978년 외국정보감시법을 통해 정보기관의 권한에 최초의 사법적 통제를 도입했습니다.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무기라는 절대 기술에 국제적 규범의 울타리를 치려는 집단적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2018년 유럽연합의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 시행은 기업과 국가의 데이터 수집·활용에 구속력 있는 법적 한계를 부과한 첫 번째 현실적 시도였습니다. 그리고 2024년 발효된 EU AI법(EU AI Act)은 안면인식 기반 대규모 감시와 사회 점수화 시스템을 허용 불가 위험 으로 분류하고 이를 금지했습니다.


이 모든 제도적 성과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기술을 막으려 한 것이 아니라, 기술을 인간의 존엄과 자유라는 기준에 종속시키는 규범과 절차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정치철학자 칼 포퍼가 민주주의를 좋은 지도자를 뽑는 시스템이 아니라, 나쁜 지도자를 평화롭게 끌어내릴 수 있는 시스템 으로 정의했을 때, 그는 민주주의의 핵심이 특정 결과의 보장이 아니라, 잘못된 권력을 수정할 수 있는 절차의 견고함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본다'는 것은, 이 교훈을 지식으로 저장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일들 AI 전장, 예측 감시, 알고리즘 차별, 보편 가치의 선택적 적용이 과거에도 반복되었던 기술과 권력의 패턴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패턴에 의식적으로 개입하는 선택을 의미합니다.


19세기 영국이 기술 패권을 독점하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의 AI 권력도 영원히 소수에게 집중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인간의 존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확산될 것인지, 아니면 감시와 배제와 전쟁의 도구로 굳어질 것인지는 결코 기술 자체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지금 어떤 제도와 규범을 만들며, 어떤 언어로 저항과 연대를 조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역사를 보는 눈은, 결국 지금 여기에서 다른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용기의 다른 이름입니다.

조선규 | 칼럼니스트  

조선규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조선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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