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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61] 오탁번의 "옛말"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61] 오탁번의 "옛말"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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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

 

오탁번

 

잠결에도 꿈결에도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내 옛말의 들머리는

백운면 평동리 바깥평장골 169번지

호적등본만 한 우리 집이다

남아있는 사진 하나 없지만

그냥 잿빛으로 눈앞에 떠오르는

내가 태어난 우리 집이다

1951년 정월 상주로 피난 갔다가

봄이 되어 돌아오니

흔적 없이 사라진 우리 집!

전쟁이 치열할 때

군용 비행장을 건설할 셈으로

동네를 다 불살라버렸는데

원주 근방까지 쳐들어왔던

적군이 후퇴하자

군인들이 다 팽개치고 북진했다

빨갛게 불타 죽은

향나무 한 그루가

잿더미가 된 우리 집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봄 내내 움막에서 살았다

참꽃이 붕알산을 물들이고

초저녁부터 부엉이가 울었다

가을 되도록

나물죽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품앗이로 외양간만 한 새집을 지었다

맑은 샘물이 솟는 앞산 아래

바깥평장골 우리 동네는

어깨 겯고 다시 일어섰다

지금도 눈 감으면

쇠버짐 부스스한 내 짱구도

침 발라가며 쓴 몽당연필도

도렷하게 잘 보인다

어머니의 밭은기침에도

문풍지가 울고

한밤중 요강에 오줌을 누면

달걀빛 처마에 깃든

참새가 잠을 깬다

 

해와 달은 쉼 없이 뜨고 졌다

백마고지 전쟁터에 나간

큰형한테서 편지가 온 날이면

네 남매가 모여 앉은 두레반에서

어머니가 편지를 읽어주었다

그날 밤 장독대 정화수에는

얼음꽃이 뾰족이 피었다

눈사람의 코가 툭 떨어져서

숯이 된 아침

나는 큰형한테 편지를 부치러

장터 우체국으로 뛰어갔다

눈발이 선 하늘을 막아서는

우체국 앞 커다란 향나무가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속삭임』(서정시학, 2024)

   

한국전쟁  중 피난살이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

   [해설

 

   피난살이를 하고 와보니

 

   1943년생인 오탁번 시인은 여덟 살 때 한국전쟁을 겪었다. 충북 제천군 백운면에서 4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오탁번은 경북 상주 지방으로 피난을 갔다가 서너 달 만에 돌아왔더니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전후의 사연이 이 시에 꽤 소상히 나온다. 어린이였지만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내 외갓집은 상주에 있었는데 외갓집 식구들은 더 남쪽인 경주 근처의 양남이라는 곳으로 피난을 갔다. 8남매였는데 나의 외할아버지는 서울에 계시다 행방불명이 되어 가장 역할을 못 하였기 때문에 피난 대열의 총 지휘자는 제일 큰 외삼촌이었다.

 

  오탁번 일가가 전쟁 중에, 그리고 정전 이후에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시에 잘 나와 있다. 사는 게 아니라 생존이었고 매 끼니 식사하기가 아니라 아슬아슬한 연명이었다. 그런데 이 시는 오 시인이 작고하기 직전에 쓴 것이다. 이 시가 실린 예술원보는 시인의 사후에 발간되었다. 왜 임종을 앞두고 이 시를 쓰게 된 것일까?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그 시각에 아주 어린 날의 기억 중 하나가 불현듯이 떠올라 펜을 잡았던 것이리라. 백마고지 전투에 나간 큰형한테서 편지와 와 어머니가 네 남매 앞에서 그것을 읽어주었고, 또 전선의 아들에게 쓴 편지를 어린이 오탁번이 장터 우체국에 부치러 뛰어갔던 것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단다. 큰형님이 돌아가셨는지 제대하고 무사히 귀가하셨는지 여쭤볼 수 없었다.

 

  시인이 돌아가신 지 어언 2년 반이 되었다. 세월이 참 빠르다. 1999년에 중국 연변과 백두산 여행을, 2000년에 실크로드 여행을 함께 하였다. 선생님께서 창간하신 계간 시전문지 《시안》의 편집위원을 5년 동안 했었고 이 문예지를 후원하는 시안시회의 회장도 했었다. 선생님과의 추억이 많다. 내 아내가 자기와 같은 오씨임을 어느 날 아시곤 나를 특별히 더 챙겨주셨다. 날 보라고, 아내한테 잘하라고 하시면서.

 

  따님 가혜 양 결혼식 후 피로연 자리에서 식사만 하고 헤어지기 아쉬워 수십 명 문인이 말죽거리에 있는 호프집으로 몰려갔다. 몇 시간 동안 고담준론을 나누면서 엄청나게 마셔댔다. 고려대학교 제자들 중 술값을 계산하는 사람이 없어 내가 호기롭게 카드를 내밀었는데 월급 반달치가 나갔다. 아깝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탁번 시인]

 

  소설가, 시인, 전 고려대 교수. 1943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및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철이와 아버지」,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처형의 땅」이 당선되었다.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했다. 동서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협상, 고산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목월문학상, 공초문학상, 유심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다. 시집 『손님』『우리 동네』『시집보내다』『알요강』 등, 소설전집 『오탁번 소설』 1~6, 학술서 『한국현대시사의 대위적 구조』, 평론집 『현대문학산고』『헛똑똑이의 시 읽기』『현대시의 이해』, 산문집 『시인과 개똥참외』, 『오탁번 시화』, 『두루마리』 등이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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