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한경옥의 "재벌"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75]
재벌
한경옥
통장에 찍힌 숫자가 얼마면
집이 몇 평이면
목에 건 루비가 몇 캐럿이면,
서울에서
땅끝마을까지의 주인이 되면
더 바라는 것이 없을까?
지상을 땡볕으로 달구는
한여름 햇살이
겨우 한 평 반짜리
팽나무 그늘을 빼앗고 있다.
―『바람은 홀로 걷지 않는다』(천년의시작, 2025)

[해설]
재벌들을 혼내키는 시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재벌’로 하였다. 그들은 돈 냄새를 잘 맡는 뛰어난 후각을 가졌다. 우리가 만든 제품이나 상품이 최고라고 자랑한다.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어마어마한 세금을 낸다.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수출도 많이 한다. 애국자가 바로 이들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런 재벌을 찬양하지 않는다.
제2연과 3연은 영화 <괴물>의 괴물을 연상케 한다. 재벌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문어발식 기업 확장에 나섬은 물론이거니와 중소기업이나 소상인이 희생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비양심을 지적한 것으로 읽힌다. 한경옥 시인이 호혜 평등, 분배의 질서, 공공의 이익, 메세나 정신 등을 시에서 직접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주제의식이 은근히 배어 있다고 느낀다.
삼성의 이재용 회장은 옥살이를 꽤 했다. 정경유착 때문이었다. 삼성문화재단을 만든 아버지의 사회 환원 정신을 이어받지 못했다. 삼성꿈장학재단에서 소년원 아이들 시치료 프로그램을 딱 2년만 후원하고는 중단하였다. 언론에 보도가 안 되니까 과감히 철수하였다. 삼성의 계열사라고 할 수 있는 중앙일보는 중앙일간지 중에서 유일하게 신춘문예 제도를 폐지하였다. 미당의 친일 행적이 자꾸 도마에 오르자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을 지원하다가 중단하였다.
시인은 한국의 재벌을 싸잡아 따끔하게 충고를 하였다. 쨍쨍 내리쬐는 한여름의 햇살이 한 평 반짜리 팽나무 그늘을 뺏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횡포를 일삼는 한국의 재벌들아! 미국 기업의 기부(donation) 정신 좀 본받으렴. 겨우 뙤약볕 피해 좀 쉬고 있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
[한경옥 시인]
충남 공주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시 전문 월간지 《유심》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시인협회 회원이다. 시집 『말에도 꽃이 핀다면』이 있다. 제25회 한국가톨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