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미 개인전 ‘깨어진 알, 깨어난 결’…파편을 이어 삶의 ‘결’을 만들다
부서지고 흩어진 조각들이 다시 하나의 나무가 된다. 깨진 달걀껍질과 자개 파편을 한 조각씩 이어 붙이며 삶의 균열과 성장의 흔적을 표현해 온 한은미 작가가 개인전 ‘깨어진 알, 깨어난 결’을 서울 강서구 마곡 Gallery 24K B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지난 9월 8일 개막해 오는 23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개인전은 ‘깨진 알’이라는 이미지에서 출발해 기존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작가 자신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작품으로 풀어낸 자리다.
한은미는 달걀껍질과 자개라는 독특한 재료를 활용한다. 본래 하나의 형태였던 달걀껍질을 깨뜨린 뒤 작은 조각들을 다시 연결하고, 자개의 빛과 색을 더해 화면을 구축한다. 작품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수많은 작은 파편과 그 사이의 틈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어느새 거대한 나무와 숲, 계절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이번 전시 제목인 ‘깨어진 알, 깨어난 결’과도 연결된다. 작가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등장하는 ‘알’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경계를 깨고 새로운 작품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깨진 조각은 단순한 파괴의 흔적에 머무르지 않는다. 다시 이어 붙이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표면과 질감, 그리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결’로 되살아난다.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소재는 ‘나무’다. 작가는 성장과 변화의 시간을 나무에 투영한다. 뿌리를 내리고 계절을 견디며 가지를 뻗는 나무의 모습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상처와 회복, 축적되는 시간과도 닮아 있다.
특히 화면을 이루는 조각들은 일정하지 않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파편들이 촘촘하게 연결되면서 굵은 나무줄기가 되고 잎과 꽃, 깊은 숲과 밤하늘이 된다. 서로 다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와 풍경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작품은 ‘완전함’보다 ‘이어짐’에 주목한다.

전시장에서는 ‘노을의 숲’, ‘빛의 이행’, ‘숲, 청보라Ⅰ’, ‘숲의 숨결’, ‘단풍, 안부’를 비롯해 ‘나무_축제’, ‘나무_밤의 꽃’, ‘나무_파란 겨울’, ‘나무_붉은 겨울’, ‘나무_하늘 숨’ 등 2025년과 2026년에 제작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가운데 ‘나무_하늘 숨’은 2026년 중앙회화대전 특선작이다. ‘나무_빛의 기둥’, ‘바오밥나무_수액’, ‘나무_보라빛’, ‘나무_봄빛’, ‘나무_노란 결’ 등 나무를 중심으로 전개한 작품들도 함께 소개된다.

출품작에서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의 변화도 두드러진다. 푸른색과 짙은 녹색 사이로 흰 꽃이 피어난 화면에서는 서늘하고 깊은 숲의 정서가 느껴지고, 노란색과 주황색이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에서는 가을 숲의 빛이 강렬하게 번진다. 붉은 잎이 화면을 뒤덮은 작품에서는 어두운 배경과 밝은 나무줄기의 대비를 통해 계절이 절정에 이른 순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자개 특유의 반사광 역시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관람자의 위치와 조명에 따라 표면의 빛이 미묘하게 변화하면서 평면 작품에 시간성과 움직임을 더한다. 같은 작품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빛을 품게 되고, 자연의 풍경 역시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임을 환기한다.

한은미 작가는 경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에서 박물관 및 미술관교육을 전공했으며 공주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2026년 중앙회화대전, 세계미술협회 신년신작전, 인디전 제10회 정기전, ‘불이 붙는 찰나’전에 참여했으며 2026년 Bank 아트페어와 2025년 서울아트쇼에도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깨짐을 실패나 상실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한 번 깨진 조각들이 서로 다른 방향과 간격을 유지한 채 다시 연결되고, 그 흔적 자체가 작품의 새로운 표정이 된다. 균열을 지우는 대신 드러내고, 상처를 감추는 대신 또 하나의 무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깨어진 알, 깨어난 결’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작가 개인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누구나 살아가며 경험하는 변화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흔적과 균열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이루는 하나의 ‘결’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한은미 개인전 ‘깨어진 알, 깨어난 결’은 9월 23일까지 서울 강서구 마곡중앙8로 79 이사케이㈜ 사옥 1층 Gallery 24K B관에서 열린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일요일과 월요일, 공휴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문의 02-2658-0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