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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눈을 잃고서야 마주한 대화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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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공원 조각상 ‘대화’가 들려주는 슬픈 이야기

며칠 전 올림픽공원을 다녀왔다. 갈 때마다 이 조각상을 보면 많은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이 조각상에 숨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서울올림픽공원 숲길을 걷다 보면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기울어진 거대한 화강암 조각을 만난다. 알제리 출신 조각가 아마라 모한(Amara Mohan)이 1987년 제작한 작품 ‘대화’다. 이 작품은 19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조성된 국제조각공원에 설치된 작품으로, 높이 약 3.3m, 길이 약 6m에 이르는 대형 화강암 조각이다. 서로 마주보며 몸을 기울인 두 인물 형상이 특징적이며, 올림픽공원을 대표하는 상징적 조형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화 Dialogue 
작가명: 모한 아마라(Mohand Amara) 국가: 알제리(Algeria)
제작년도: 1987년소장일자:  1987.09.30
크기: 6.0X1.8X3.3 (m) 재질: 화강암(Granite)

이 작품에는 널리 알려진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서로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있었다. 그러나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아 늘 다투었고, 끝내 서로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대화가 단절된 두 사람에게 신은 벌을 내렸다. 눈을 빼앗아 서로를 볼 수 없게 하고, 대신 평생 서로에게 기대어 대화를 나누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화’ 속 인물들은 눈이 없다. 

 

시선을 잃은 얼굴은 어딘가 공허하고, 입은 굳게 닫혀 있다. 대신 몸은 서로를 향해 깊이 기울어 있다. 마치 눈으로 보지 못하는 대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껴야만 한다는 듯한 자세다.

 

이 조형물은 단순한 형상의 표현을 넘어 ‘경청’이라는 인간 관계의 본질을 드러낸다. 올림픽공원 측에서도 이 작품을 ‘말하기보다 먼저 듣는 것, 그것이 대화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에게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진정으로 보고 있는가. 끊임없이 말하고 있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가. 빠르게 연결된 사회 속에서 오히려 단절은 더 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화’ 앞에 서면 묘한 침묵이 흐른다. 

 

그 침묵은 불편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다. 눈을 잃은 두 형상은 역설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조용히 말한다.

 

진짜 대화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올림픽공원의 나무 사이에서 이 조각은 오늘도 변함없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그리고 지나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가.

작품 특성:

올림픽공원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지리, 언어, 문화, 정치 등의 장벽을 넘어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가치를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알제리 사람인 자신이 작품을 통해 한국인들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예술이 훌륭한 소통 수단이라고 믿고 있다. 작품에서 두 인물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있다. 대화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마침내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는 작가의 믿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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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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