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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윤후명의 "폐쇄병동에서 나오다 —비단길 편지 11"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윤후명의 "폐쇄병동에서 나오다 —비단길 편지 11"

이승하 시인
입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74]

폐쇄병동에서 나오다

—비단길 편지 11

 

윤후명

 

폐쇄병동에서 나와

비단길로 향했다

자멸파라고 불렸던 몽롱한 시절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구도자 같은 몸가짐으로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알코올의 세계를 휘청거리다가

다른 세계를 찾아서 새롭게

걸어야 한다

모르는 길의 자화상을 찾아 그리고 싶은 시간

중앙아시아 고원을 거쳐 우랄 산맥을 넘어

모든 산과 바다가 만나는 비단길

어디엔가 있을

진정한 나를 그리고 싶은 시간

 

―『비단길 편지』(은행나무, 2022)

 

비단길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다른 세계를 향해 걸어가다

 

  지금으로부터 20, 30년 전에 뵈었던 윤후명은 거의 술독에 빠져 살고 있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술에 취했을 때와 술이 안 들어갔을 때가 판이하게 달랐다. 술에 취하면 말이 거칠어졌고 가학적이 되어 옆에 있기가 무서웠다. 알코올 중독자로 폐쇄병동에 격리되어 지내기도 한 모양이다. 소설 쓰고 난 이후 윤후명은 폭음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음에 틀림없다.

 

  폐쇄병동에서 나와서 그는 청정한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둔황, 누란 등 예전에는 비단길(silk road)로 불린 길에 있는 도시에 간 것을 계기로 그의 인생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대표작들을 내놓았고, 살기등등하기까지 한 그의 생활 태도도 바뀌었다.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난 이후 그는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70년대 동인인 강은교ㆍ김형영ㆍ정희성을 다시 만나면서 한참 동안 중단했던 시 쓰기를 다시 시작했고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다. 예술의 신 뮤즈는 그를 잠시라도 쉬게 하지 않았다. 소설 전집 12권짜리가 나왔고 동인지와 시집도 속속 나왔다. 그림전도 여러 번 했다. 후학들에게 소설 창작 지도도 꾸준히 했다. 병마가 육신을 짓누르기 시작해도 그는 비단길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58일에 비단길에서 쓰러졌다. 그는 시인, 소설가, 화가, 교수로 14역을 하면서 살았다. 그는 유골함 안의 재가 되었지만 작품들이 무수히 부활시킬 것이다. 이 땅의 아주 큰 작가가 갔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윤후명 작가]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되었다. 1969년 연세대학교를 졸업, 강은교, 김형영, 박건한 등과 함께 시 동인지 『70년대』를 창간하고, 도서출판 삼중당에 취직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1977년 첫 시집 『명궁』을 출간하였다.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이 당선되어 소설가와 시인의 길을 병행하였다. 1983년 『돈황의 사랑』으로 제3회 녹원문학상, 1984년 『누란』으로 제3회 소설문학작품상, 1986년 제18회 한국창작문학상, 1994년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로 제39회 현대문학상, 1995년 『하얀 배』로 제19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07년에는 제10회 김동리 문학상을 받았다. 창작에 전념하면서 문학비단길 고문과 국민대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였다. 202558, 향년 79세로 별세하였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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