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시조 5 ] 달팽이의 생각 _ 김원각

달팽이의 생각
김원각
다 같이 출발했는데 우리 둘밖에 안보여
뒤에 가던 달팽이가 그 말을 받아 말했다
걱정 마 그것들 모두
지구 안에 있을 거야

느림의 철학, 시조의 울림 — 김원각 「달팽이의 생각」이 던지는 질문
- 류안
한국 사회는 속도에 중독되어 있다. ‘빨리빨리’는 일상의 구호가 되었고, 경쟁은 삶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 교육, 취업, 인간관계까지 모든 영역에서 빠름은 능력으로, 느림은 결함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김원각 시인의 시조 「달팽이의 생각」은 조용하지만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다 같이 출발했는데 우리 둘밖에 안 보여.” “걱정 마 그것들 모두 지구 안에 있을 거야.”
짧은 3장으로 구성된 이 시조는 단순한 형식 속에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모두가 함께 출발했지만, 경쟁의 결과로 보이지 않게 된 존재들. 시인은 그들을 ‘사라진 자’가 아닌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자’로 바라본다. 뒤에 가던 달팽이의 말은 존재의 존엄을 되새기게 한다. “지구 안에 있을 거야”라는 말은,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도 여전히 같은 세계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 시조는 1등 만능주의와 과잉 경쟁의 병리적 구조를 비판한다. 동시에 느림의 미학을 회복하려는 철학적 제안을 담고 있다. 느림은 실패가 아니라 선택이며, 속도는 삶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강박일 뿐이다.
김원각의 시조라는 전통 형식의 힘을 다시금 보여준다. 짧은 구조 속에서도 사회 비판과 인간 존엄을 동시에 담아내며, 여백과 함축의 미학을 통해 독자의 사유를 자극한다. 시조는 단순한 시가 아니라, 사유의 구조이며 존재의 리듬이다.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시조는, 독자에게 존재의 본질과 삶의 속도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누가 앞서고, 누가 뒤처졌는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존재를 ‘보이지 않게’ 만들었는가.
이 시는 단지 달팽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느림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느림은 가장 급진적인 철학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