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빈 개인전 ‘드는 것, 나는 것 그리고 곁’…일상 속 작은 수호신의 의미를 묻다
서울 도심 한 켠, 조용한 전시장 바닥 위에 놓인 작은 존재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말없이 서 있지만, 그 표정은 묘하게 따뜻하다. 때로는 익살스럽고, 때로는 무심한 듯하지만 묘하게 시선을 붙잡는다. 이정빈 작가의 개인전 ‘드는 것, 나는 것 그리고 곁(The Passing, Standing by)’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도자 전시가 아니다. 불안과 염려가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우리를 지켜주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유의 공간이다.

‘냥업신’,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새로운 수호의 형상
전시의 중심에는 작가가 구축해 온 ‘냥업신’ 연작이 있다. 고양이를 닮은 이 도자 조형물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닌, 한국의 전통 가신 신앙과 벽사(辟邪)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존재다.
과거 집 안에는 가족을 지켜주는 신이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었던 그 ‘곁의 존재’. 이정빈은 이 오래된 감각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불러낸다.
작품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거칠고 담백한 질감, 절제된 색감 속에서 더 깊은 정서를 드러낸다. 이는 분청사기의 물성을 기반으로 한 작업 방식에서 비롯된다. 흙의 흔적과 시간의 결을 그대로 품은 작품들은 완벽함보다 ‘존재의 온기’를 전한다.
‘드는 것’과 ‘나는 것’, 그리고 ‘곁’이라는 감각
‘드는 것’과 ‘나는 것’은 기운의 흐름을 의미한다. 들어오고 나가는 에너지, 즉 삶의 균형과 순환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붙은 ‘곁’은 이 전시의 핵심 키워드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멀리 있는 거대한 힘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은 마치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머무르며 공간을 지킨다. 관람객은 그 사이를 걸으며, 어느 순간 자신도 그 ‘곁’의 일부가 된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함께 있음이 만드는 ‘관계적 안녕’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특징은 설치 방식이다. 작품들은 개별 오브제가 아니라 하나의 ‘군집’으로 배치된다. 러그 위에 모여 있는 다양한 형태의 조형물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면서도, 하나의 공동체처럼 존재한다. 이 장면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안녕은 혼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귀엽고 작은 형태의 조형물들이지만, 그 안에는 불안을 견디고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태도가 은유적으로 담겨 있다.
재료와 시간, 그리고 장소가 만든 차이
전시에는 2025년 고흥 작업과 2026년 양평 작업이 함께 소개된다. 같은 작가의 작업이지만, 지역과 재료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질감과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제작 방식의 차이를 넘어, ‘흙’이라는 재료가 가진 지역성과 시간성을 드러내는 요소다. 관람객은 이를 통해 작품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통과한 존재임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예술이 다시 ‘곁’으로 돌아올 때
이정빈의 작업은 거창한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는 방식으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위로받는가. 그리고 우리 곁에는 무엇이 있는가. 전시는 말한다. 그 답은 어쩌면 아주 작고, 사소하며, 늘 곁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전시 정보
- 전시명: 이정빈 개인전 ‘드는 것, 나는 것 그리고 곁’
- 기간: 2026년 3월 12일 ~ 4월 5일
- 장소: 16아카이브
- 관람시간: 12:00 ~ 19:00
이정빈의 ‘냥업신’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이자, 곁을 지키는 존재에 대한 가장 따뜻한 상상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저 곁에 있어주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