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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26】 딱지 잡설

시인 김선호 기자
입력
[사설시조]

딱지 잡설


김선호 

 

  지난날 돌아보니 딱지 끼고 살아왔네

 

  아무것도 모르다가 낯을 가린 그 어릴 적 남은 뭐가 못마땅한지 울며불며 보채다가 어머니 등에만 붙은 껌딱지로 시작해서 가갸거겨 운을 떼며 초등학교 들어가선 콧수건 네모로 늘여 가슴팍에 달았어도 어느새 딱딱히 굳은 코딱지를 달고 살고 빼앗고 뺏기는 걸 열 살 무렵 알았으리 조르고 떼써서 산 동그란 종이 딱지로 계급장 따져가면서 주거니 받거니 놀았었네 개천에서 용 난다고 공부해야 출세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죄어오던 고교 시절 귀에도 딱지가 앉아 귓속이 얼얼했지 세상사 맘대로 되나 곳곳이 가시밭길 비뚤어지고 어그러지고 넘어지기 일쑤다 보니 속에 핀 화딱지 꽃이 얼굴까지 벌겠었지 엎친 데 덮친다고 입주권을 산 게 하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딱지로 둔갑해서 눈앞이 캄캄해지고 등골이 시린 날도

 

  한 방에 홈런을 날릴 로또 딱지 사러 갔네

딱지 잡설_ 김선호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딱지는 크게 세 가지의 의미로 쓰인다. 상처에서 진물 따위가 나와 말라붙은 껍질 등의 껍데기, 그림이나 글을 써넣어 어떤 표로 쓰는 종잇조각, 그리고 고물딱지, 심술딱지처럼 비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등이다.

 

추억으로만 남았지만, 어릴 적 딱지는 인기 좋은 장난감이었다. 종이를 접어 만든 사각 딱지는 비교적 흔했지만, 그림이나 글씨가 새겨진 원형의 종이 딱지는 그렇지 않았다. 돈을 주고 사야 하기 때문이다. 딱지마다 각각 별의 개수나 캐릭터별로 우열이 있어서 벼슬 높은 딱지가 낮은 딱지를 이기는 방식이다. 인심 쓰듯 딱지 몇 장을 주면 친구들이 줄줄 따른다. 군대도 사회생활도 한참 먼 나이에 벌써 계급 놀이를 한 셈이다.

 

지난해 로또복권 판매량이 59,562억 원이라고 기재부가 밝혔다. 20143489, 201943,181, 202151,371억 등의 추이로 볼 때 머잖아 6조를 웃돌 거란 전망도 나왔다. 그만큼 한 방을 기대하는 서민들이 많음을 방증한다. 구매층이 서민만은 아닐 것이다. 빈부를 막론하고 요행의 유혹 앞에 자유롭지 않다.

 

돌이켜보니, 안쓰러운 젊은 시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이가 당연한데도 늘 비교하며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뒤를 보자고 자위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채우려 안간힘 쓰고 불평하다가 좌절하기 일쑤였다. 부질없는 짓임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그래도 세간살이에 빨간딱지 붙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가을비가 부슬대며 세월을 재촉한다. 그렇지, 게딱지에 밥이나 살살 비벼야겠다.

시인 김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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