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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80] 한영식의 "장애인에 관한 기록 1-지적장애 30대 여성" 외 1편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80] 한영식의 "장애인에 관한 기록 1-지적장애 30대 여성" 외 1편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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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관한 기록 1

-지적장애 30대 여성

 

한영식

 

공원묘지 가는 길 옆

희망학교 식당 주방 일을 돕는다는

그대는 모교를 자퇴했다고 말했지

병든 어머니를 위해서

돈이 필요해서

학생은 주방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자퇴를 선택한 그대

갑자기 어깨가 뭉치면 안 된다고

내 어깨를

매운 손가락으로 눌러주던 그대

결혼을 하고 싶어

저축을 하고 있다는 그대

그대는 장애인이 아니라

고운 여자다
 

 

장애인에 관한 기록 3

-시각장애 할머니

 

아파트 지하 2

차로 옮길 봇짐 둘 주차장 바닥에 내려놓고

어서 오라고 어서 오라고

허공에 손을 흔드는 할머니

두 살 때 시력을 잃었다는 할머니

양산에서 밀양 가는 길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초행길인 내게 친절하게 설명을 하신다

밀양역 앞 주공아파트로 가면 된다고

경찰서를 지나면 다리가 나오고

다리가 끝나는 곳에서

우회전하면 아파트가 보이고

입구에서 바로 좌회전을 하면

혼자 살고 있는 집이 14층에 있다고

 

나는 봇짐을 들고

14층 할머니가 홀로 사시는 집에

할머니를 남겨두고 내려왔다

눈에 보이는 것도 제대로 못 보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할머니를 걱정하면서

 

—『장애인복지관』(모악, 2023)

 

꽃지게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시인이 만난 두 명의 천사

 

  이 두 편의 시에 나오는 지적장애 30대 여성과 시각장애 할머니는 한영식 시인이 만난 실존인물이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 다 너무 착해서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받았다.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에피소드치고도 가벼워 시가 될 얘기도 아니다, 사실은.

 

  30대 여성은 지적장애인이다. 병든 어머니를 돌봐 드리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러자면 식당 일을 해야만 했고, 장애인학교에 다니는 학생 신분이면 식당에 취직할 수가 없었나 보다.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데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이 여성의 소망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이 시집이 재작년에 나왔으니 결혼했을 수도 있겠다. 한 시인에게 연락해 확인을 해봐야겠다.

 

  두 살 때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 할머니는 이 동네 지리를 사지와 두 눈이 멀쩡한 시인보다 훨씬 더 잘 안다. 봇짐을 들어드리고 나오는 시인이 이 길이 초행길임을 알고는 길을 잘 찾아가라고 설명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거룩하다. 친절을 받아야 할 분이 친절을 베푼다.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면서 살아가고 있는 두 장애인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소금 같은 분이다.

 

  20일 수요일에 오랜만에 용인 처인구에 있는 가온누리평생학교에 가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시에 대해 몇 마디 하였다. 오후 1, 점심시간 직후여서 타이밍이 안 좋은 시간이었다. 꾸벅꾸벅 조는 이, 넋 놓고 있는 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이, 말을 시키니 어눌하게 답하는 이, 시간 내내 투덜투덜 무언가 불평하는 이……. 각양각색, 중구난방이었지만 2시간 동안 시에 대해 얘기를 했다.

 

  詩人이라는 한자어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詩는 말씀 言과 절 寺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말로써 참선하고 도를 닦는 절을 지으니 우리 마음을 얼마나 깨끗하게 하겠습니까. 좋은 시는 천년을 갑니다. 人은 지게와 지겟작대기 모양입니다. 지게가 뭔지 아세요? 예전에는 지게에 짐을 지고 다녔으니 중요한 운송수단이었습니다. 지겟작대기는 사람 인자의 밑에 있는 모양입니다. 사람은 서로 기대고 사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을 겁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어 보십시오. 지겟작대기가 있어야 지게는 안 쓰러집니다. 여러분이 안 쓰러지게 도움을 주었던 분들에게 이제는 여러분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행동으로는 하기 어렵겠지만 말로는 할 수 있습니다. 고맙다고 하면 됩니다. 감사하다고 하면 됩니다. 내 말을 알아들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영식 시인]

 

  1964년 여수 앞 돌산 방죽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를 졸업했다. 《사람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애인복지관』은 그의 첫 시집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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