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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63] 권기덕의 "형이라고 불렀다"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63] 권기덕의 "형이라고 불렀다"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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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해설]

형이라고 불렀다

 

권기덕

 

체육 시간

선생님 티셔츠가 내 티셔츠를 본다

 

글자, 똑같다

하늘색 바탕, 똑같다

웃는 하마 그림, 똑같다

 

사이즈만 조금 다르다

 

큰 글자와 작은 글자가

마주 보기도 하고

 

하늘색과 하늘색이 함께

달리기도 하며

 

큰 하마와 작은 하마는 나란히

옆에 서기도 한다

 

큰 티셔츠와 작은 티셔츠가

자꾸만 달라붙는다

 

나도 모르게

체육 선생님을

형이라고 불렀다

 

—『사과의 몸속에는 사각형이 살고 있어』(창비, 2025)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운동장에서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운동장에서 숨을 헐떡이며 달려야 한다. 산길을 걷고 걸어 꼭대기에 이르러 야호! 외쳐보아야 한다.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다가 물에 뛰어들어 어푸어푸 헤엄을 쳐보아야 한다.  몸이 지독히 약한 나였지만 체력장이라는 시험 제도가 있어서 새벽에 연습한답시고 뜀박질도 했었고 아이들 등교 전 시간에 학교 운동장에 가서 철봉에 매달려보기도 했었다. 그래봤자 점수는 형편없이 나왔지만. 체력장 연습 중에, 시험 중에 사망하는 아이가 나오자 이 제도를 없애버렸다.

 

  흡사 커플이 맞춰 입는 티셔츠인 양 체육 선생님과 내가 똑같은 옷을 입고 운동장에서 체육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이즈만 다를 뿐 똑같은 옷이니 보기에 얼마나 귀엽고 재미있을까. 선생님이 아이처럼, 아니 아이가 되어, 함께 운동하는 것도 참 즐거운 풍경이다. 운동장에서 뒹굴다 보니 아이가 신분의 차이를 잠시 잊고 말았다. 자기도 모르게 선생님을 형이라고 불렀는데 선생님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여기저기서 어린아이들 조기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특히 취학 이전 아이에게 영어 조기교육을 시키려는 학부형들이 쓰는 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때는 눈을 휘둥그레 뜨게 된다. 그렇게 많은 돈이? 함께 듣게 되는 이야기는 중학교 국어 선생님들이 하는, 아이들의 현저히 떨어진 문해력에 관한 것이다. 많은 아이가 평범한 우리말조차 구사할 줄을 모르고 뜻도 알아듣지 못한단다. 한자로 된 낱말의 뜻은 거의 전부 모른다고 한다. 영어 실력은 사실 국어 실력이 있어야 높일 수 있다.

 

  나는 어릴 때 태권도 도장과 수영장에 가본 적이 없다. 세상을 헛살았다. 한 아이가 부지불식간에 형이라고 부른 선생님이 계시면 그 선생님 앞에 가서 큰절을 올리고 싶다. 훌륭한 교육자는 에헴 하고 폼을 잡지 않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르도록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이 동시 속의 선생님은 아이들이 분명히 좋아하고 존경할 것이다.

 

   [권기덕 시인]

  

   1975년에 태어나 예천과 안동, 대구에서 성장했다. 매 순간 시의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2009년 《서정시학》 시 부문 신인상을 받고, 2017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P』 『스프링 스프링』, 동시집 『내가 만약 라면이라면』을 냈으며, 9회 어린이와 문학상을 받았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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