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이관묵의 "팔"
팔
이관묵
정부청사 앞
목이 쉰 현수막들 치켜들고 섰느라
고생하는 나무들
추운 팔들
삶은
허공에 팔을 뻗어보는 일이라고
허공을 팔의 언어로 휘저어보는 일이라고
그러나 팔아,
네 팔로는 세상이 꿈쩍도 않는구나
어쩌냐
지상의 언어로 시를 쓰는 내 팔도 허공만 찢어발길 뿐
탕진할 뿐
해 기울고
땅거미가 내미는 팔 없는 팔에 끌려오면서
나는 팔로 외쳤다
저 팔들이 세상의 부모이고
자식이라고
—『서향집』(서정시학, 2024)

[해설]
불쌍해라 도시의 가로수들
도시의 가로수들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불쌍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봄이 오면 가로수들은 봄을 맞을 준비를 나름대로 할 터인데, 구청이나 시청에서는 일꾼들을 사서 가지치기 작업에 나선다. 확실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다. 거리의 간판들을 가린다, 전깃줄에 피해를 준다, 가지가 밑으로 처지면 행인에게 지장을 준다는 등의 이유로 가지치기를 하는데 몸체와 가장 큰 가지의 밑동을 몇 개 남기고 몽땅 자른다. 그때 그 나무들의 몰골은 ‘능지처참’이란 말을 연상케 한다.
초봄의 어느 아침, 버스를 기다리면서 조만간 가지치기할 가로수를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보다 깜짝 놀랐다. 새 한 마리가 작은 가지를 물어와 집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기했다. 아내인지 남편인지 모를 또 한 마리가 가지를 입에 물고 날아와서 집 짓는 일을 도왔다. 두 마리의 협동작전은 아기를 낳을 둥지를 만들기 위한 것임을 나는 눈치챘다. 며칠 후 집은 완성되었고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그런데 보름쯤 후에 바로 가지치기가 이루어졌고 새집도 새들도 그날로 사라졌다. 서울시내에만 해도 얼마나 많은 새집이 사라졌을까! 아아 정말 눈물겨운 일이었다.
이관묵 시인은 가로수들이 현수막 다는 일에 동원된 것을 보고 혀를 찬다. 가로수들이 죄인인 양 노끈에 칭칭 감겨 있다. 가로수의 가지는 사람으로 치면 팔이다. 그 팔들이 묶여 있다. 현수막에 적혀 있는 내용이 항의거나 호소라면 그래도 나무의 고충에 혀를 찰 일이다. 나무야, 너의 그 팔이 많이 아프겠지만 참아라. “저 팔들이 세상의 부모이고/ 자식”이라고 생각한 시인은 앙상한 겨울나무에 대해서도, 목이 쉰 현수막을 내건 사람에 대해서도 애틋하다는 생각에 혀를 찬다. 그런데 이런 현수막은 1/100도 안 된다.
내가 사는 동네의 현수막은 여당과 야당이, 두 당의 국회의원이, 혹은 시의원이나 구의원이 서로 비방하거나 자화자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자기 얼굴 사진을 크게 현수막에 넣는다. 1, 2주일에 한 번은 바뀐다. 길을 걸으면 그들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지고 화가 난다. 저런 저속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 내가 뽑은 사람인가?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인가? 국회의원인가? 이 지역의 의원인가? 아이들이 볼까 걱정되는 상스러운 말도 종종 보게 된다. 환경론자들은 말한다. 현수막은 엄청난 공해라고. 재생이 불가능하고 태우면 유독한 가스가 나오는데 영원히 썩지 않기 때문에 태울 수밖에 없다고. 나무들의 고생을 아는 시인에게 인사를 꾸벅, 하고 싶다.
[이관묵 시인]
1947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1978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동백에 투숙하다』『수몰지구』『변형의 바람』『저녁비를 만나거든』『가랑잎 경』『시간의 사육』『반지하』 등이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