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조】화란춘성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8】
화란춘성
김선호
나지 나지 하던 난리 산과 들에 터졌는디
오줌 지려 울담 쌓는 산짐승도 아닌 거이 물려받은 그 자리서 그냥 살면 되는 거이 겉으론 순둥이 겉애도 속으로는 모진 거이 찔레 장미 가시 돋워 씀바귀 쓴맛 품어 애기똥풀 냄새 뿜어 아카시아 허우대 세워 들꽃은 드러누운 채 눈에 불을 키는 기라 색조화장 짙게 하고 미인계도 써보다가 머리띠 둘러매고 떼거리로 앙알대다 치거니 받거니 하며 피를 철철 흘리는 기라
근데 말이라 저리는 기 밉지만은 않은 기라 어여삐 치장하고 향기도 살짝 품어 귀염 좀 받아보려고 호들갑을 떠는 기라 큰놈은 높은 디서 작은놈은 바닥에서 빨강 노랑 하양 자주 눈앞이 환한 기라 게다가 융복합 시대 어우러지니 딱인 기라 세월 앞에 장사 없으니 저들도 한철인디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옛말을 우찌 알고 가을엔 다 누래져서 언제 그랬나 싶게 하나인 기라
전쟁 다 끝나도 두 쪽인 그들과는 딴판인 기라

[해설]
화란춘성花爛春盛
평화롭게 보이지만, 식물도 살아남으려고 무척이나 애쓴다. 옆자리서 햇빛을 가리면 줄기를 더 높이 뻗는다. 광합성을 해야 목숨줄을 지탱하기 때문이다. 다른 종이 들어오지 못하게 저희끼리 빼곡하게 군락을 이루기도 한다. 지금 흐드러진 꽃 천지는 그만큼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다.
더 잘 보이려고도 애쓴다. 종족을 이어가려면 예쁜 색과 달콤한 향으로 벌과 나비를 불러야 한다. 푸른색의 꽃이 없는 이유는 이파리와는 다른 색이어야 눈에 띄기 때문이다. 오색찬란한 그들이지만, 가을 깊으면 한통속이 된다. 그 푸릇푸릇하던 혈기 다 내려놓는다. 한결같이 누런색으로 갈아입고 화해의 악수를 청한다.
각설하고, 백화만발한 봄이 깊어간다. 화란춘성이다. 피를 철철 흘리는 꽃들의 전쟁처럼, 나라도 들썩댄다. 뺏으려고, 지키려고, 혈투가 사납다. 시한부 전쟁이니 머잖아 끝날 테다. 꽃들의 가을처럼, 우리도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리되길, 이번에는 믿어볼 일이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등 네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