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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탐방] 80세 화백이 한지로 엮은 삶의 흔적… 백원선 개인전 《암중모색 2》

류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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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평론가·교수·작가들 발길 잇달아… 한지의 현대적 재해석과 새로운 가능성 제시

[코리아아트뉴스=류안 기자]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의 번잡한 소음을 뒤로하고 갤러리 반포대로5의 문을 열었을 때, 전시장 안을 감싸고 있는 것은 기묘한 고요함과 묵직한 긴장감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지 작가 백원선 화백의 61번째 개인전 《암중모색 2》가 열리고 있는 현장이다. 

백원선 작가 초대전 '암중모색2"

이번 전시는 나이 80세를 넘긴 거장이 자신의 예술적 여정을 집대성하며 선택한 ‘둥근 원의 철학’을 펼쳐 보이는 자리다. 전시장 벽면을 채운 작품들은 단순한 시각적 감상의 대상을 넘어, 한 인간이 평생을 걸쳐 걸어온 치열한 정신적 수행의 궤적을 웅변하고 있었다.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백원선 화백(오른쪽)

특히 이번 전시는 미술평론가와 교수, 동료 작가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백 화백이 ‘한지’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오브제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현대 추상 회화가 나아갈 새로운 가능성과 이정표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멀리서 보던 평면 추상화의 고요함은 이내 경이로운 입체감으로 바뀐다. 백 화백은 붓을 쥐는 대신 한지와 고서의 파편을 손으로 직접 찢고, 오려내고, 덧붙인 뒤 다시 실과 바느질로 꿰매는 독창적인 콜라주 기법을 선보인다. 

백원선 ㅣ 緣-karma, 90x90cm, hanji, collage, ink 2026

화면 위에는 한지 고유의 거친 섬유질, 그리고 깊게 스며든 먹의 농담, 실로 표현된 구성감 등이 교차한다. 무려 7~9번에 달하는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올린 화면은 회화와 공예, 설치의 경계를 유연하게 허물며 묵직한 '건축적 견고함'을 뿜어낸다. 인위적인 물감을 과감히 배제하고 한지 본래의 빛깔과 먹의 농담만으로 화면을 조율해 낸 화폭에서는 깊은 한국적 정서와 혼이 배어 나온다.
 

 [전시 동영상 : 백원선 작가 초대전 ] 

미술비평적 관점에서 백 화백이 행하는 ‘찢고 붙이는 행위’는 깊은 상징적 은유를 지닌다. 찢어진 한지 조각들을 다시 붙이는 행위는 개인과 사회가 가진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과정과 닮아 있다. 단절된 기억을 잇고 실존적 상흔을 봉합해 나가는 숭고한 노동을 통해, 관람객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길을 모색하는 본질적인 ‘암중모색’의 가치를 공유하게 된다. 

緣- karma #4 한지 collage 116x91cm 2026
백원선  ㅣ 緣- karma #4 ,한지 ,collage, 116x91cm ,2026

전시 제목인 『암중모색』은 지난 2025년 이재언 미술평론가가 명명한 것으로, 그는 백 화백의 작업을 단순한 조형 실험이 아닌 '삶과 수행의 기록'이라 평했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길을 찾듯, 절실함 속에서 발견한 성숙과 화해의 철학이 신작 ‘緣-karma(연-카르마)’ 시리즈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백원선 작가 초대전 '암중모색2'

◇ “둥근 것은 땅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신작들은  거대한 원형(圓)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앞에 서서 캔버스를 응시하다 보면 문득 “둥글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백원선의 원은 컴파스로 그린 것처럼 매끄럽고 완벽한 기하학적 도형이 아니다. 찢기고 붙여지고, 꿰매지는 불완전한 과정 속에서, 천연의 색상들이 조화를 이루어 비로소 ‘원을 닮은 형상’에 도달한다. 수학적 완벽함이 아닌, 삶의 거친 풍파를 지나며 다듬어진 ‘인생의 둥근 마음’이다.
 

“둥근 것은 땅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신념처럼, 그의 원은 타자를 상처 입히지 않고 온전히 감싸 안으려는 포용의 철학을 대변한다. 분열과 갈등이 심화된 불안의 시대에, 작가는 예술이 제안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윤리적 모델을 이 둥근 형상을 통해 나지막이 제시하고 있다. 

백원선 화백은 한지 작업을 할 때 가위나 칼을 쓰지 않고, 오직 손으로 찢는 작업을 한다. [사진 : 작가 제공]

백원선 화백은 50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화단에 입문했으나, 지금까지 61회 개인전, 600여회 이상의 국내외 전시에  참여하며 뉴욕, 독일, 파리 등 세계적인 아트페어에서 거장 앤디 워홀 등과 함께 전시되는 등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From Korea, Design by Korea”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세계 미술계에 각인시킨 저력은 이번 전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백원선 작품 부분

전시를 관통하는 가장 큰 울림은 거장이 발표한 아티스트 노트에서 찾을 수 있다.  화백은 “과거 수직과 수평만을 고집하던 결점을 넘어 시작과 끝이 없는 둥근 원을 선택했다”며, 창작 과정에서 마주한 분노와 외로움을 절실함을 통해 긍정의 힘으로 전환시켰다고 고백한다. “꽃은 절실함에서 피우고 반드시 열매를 씨앗으로 만든다”는 그의 말처럼, 수없이 반복된 작업은  묵직한 수행의 무게로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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緣- karma #4 ,한지 , collage, 98x98cm , 2019

나이 80세에 제작된 신작들이 관람객의 얼굴에 어떤 표정을 불러일으킬지 설렌다는 화백의 기대처럼, 이번 전시는 관람객에게 침묵 속의 깊은 대화를 청하고 있다. 거친 일상에서 벗어나 내면의 상처를 위로받고 나만의 둥근 마음을 되찾고 싶은 이들이라면, 갤러리 반포대로5에서 피어난 백원선 화백의 치열하고도 고요한 세계를 직접 거닐어보기를 권한다. 전시는 7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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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선작가#갤러리반포대로5#한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