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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의 세상보기: 시] 선림원지(禪林院址)를 가다 / 홍영수

시인 홍영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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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림원지(禪林院址)를 가다

홍영수

 

미천골 쌀뜨물의 물길 따라 그곳을 가고 싶다

소외된 욕망이 숲길 따라 찾아들고

잠시 찾아든 세속과의 이별이 숨 고르는 곳

끓어오른 오욕이 식어가고

솟구치는 칠정이 멈추어서

사리처럼 빛나며 장엄한 염불을 하는 곳

천년의 숨소리가 석등 귀꽃의 꽃봉오리에 맺힐 때

날아든 각다귀판의 온갖 소음들이

금당터 앞에서는 허리 구부려 자세를 낮추는 곳.

공양간 발우공양에 담긴 감사의 기도와

수도승의 독경 소리가 숲의 새벽잠을 깨우는 곳

3층 탑의 이끼엔 탑돌이의 발걸음 소리가 끼어있고

석등의 심지엔 법열의 불꽃이 타오르는 곳

내가 나의 모습으로 텅 빈 절터를 바라보면

사방을 둘러봐도 보살도 법당도 보이질 않는 곳

내가 아닌 내가 되어 바라보니 붓다가 보이는 그곳.

시작 노트 : 비움으로 채워지는 천년의 숲, 선림원지에서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세속의 번뇌와 억누를 수 없는 욕망들이 삶을 무겁게 짓누를 때가 있다. 끓어오르는 세속의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을 안고 찾아든 곳은 강원도 양양의 미천골, 물길이 이끈 발걸음으로 깊은 숲속에 천년의 숨결이 숨 쉬는 '선림원지(禪林院址)'였다.

 

신라 시대 수많은 수행승의 공양을 짓느라 쌀뜨물이 계곡을 하얗게 메웠다는 '미천(米川)'의 계곡 길을 따라 걸으며, 내 안의 자리한 허황한 욕망과 이기심 등이 미천골 물길에 씻겨 내려가기를 바랐다. 그때, 침묵하는 절터에 서 있는 삼층석탑의 상륜부에서 들려오는 독경 소리를 들었다. 순간, 천년 세월을 품은 숨소리에서 번뇌가 소멸하고 세상 각다귀판의 소음들이 사라졌다.

 

아집과 고뇌를 모두 내려놓고, ‘내가 아닌 내가 되어' 자아를 온전히 비워내니, 비로소 사방에 가득 찬 붓다의 현존을 깨닫게 되었다. 옛 모습은 사라졌으나 고불심(古佛心)이 또렷이 남아있는 선림원지에서 스스로 비우고 덜어낼 때 가장 나답고 존엄한 존재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음을 절터에 흩어진 와편들의 염불하는 소리에서 배울 수 있었다.

사진/홍영수. 2023년  6월 3일 답사

홍영수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홍영수 시인

-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 한탄강문학상 대상
- 아산문학상 금상
-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지구의 유언장』, 자연과 인문, 2025
 

시인 홍영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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