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해설] 안학수의 "새엄마"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30]
새엄마
안학수
낳아 준 엄마의 얼굴도 못 본
다섯 살짜리 꼬마 효령이는 오늘
오랜만에 아주 기쁜 날이랍니다.
오래오래 함께 살겠다고
꼭꼭 약속했던 엄마들은
가난한 농사꾼 아빠가 싫다고
술 먹고 주정하는 아빠가 밉다고
정만 들여놓고 멀리 떠났답니다.
오늘 들어온 네 번째 엄마는
화장한 얼굴에 빨간 손톱이 예쁘고
짧은 치마랑 물들인 머리도 멋진
아름다운 엄마라서 더 좋답니다
먼지 범벅 코 범벅 새까만 손으로
새엄마를 만지고 또 만지는 효령이
다른 집 엄마는 헌 엄마지만
자기네 엄마는 새엄마라고 자랑합니다
―『낙지네 개흙 잔치』(창비, 2004)

[해설]
친자식이 아니라고 해서
다섯 살배기 효령이는 친엄마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일찍 세상을 뜬 것인지, 아기 낳고 바로 사라진 것인지, 미혼모여서 세상에 엄마로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었는지 시인이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아서 알 수 없다. 외국에서 시집온 여성이라 다문화 가정을 이뤘는데 아기만 낳고 증발해 버렸거나 본국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엄마보다 아버지가 문제다. 아이 하나 딸린 가난한 농사꾼과 같이 살겠다고 온 이가 분명히 있었는데 술 마시고 주정을 하니까 못 견디고 나간 새엄마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번에 온 네 번째 엄마는 전에 왔던 엄마들과 다르다. 화장한 얼굴에 빨간 손톱이 예쁘고 짧은 치마랑 물들인 머리도 멋지다. 그래서 효령이는 새엄마를 만져보고 또 만져보고……. 효령이는 동네 아이들한테 자랑한다. 너네 엄마는 헌 엄마지? 우리 엄마는 새 엄마, 새엄마라고. 예쁘다고.
사실 아주 슬픈 동시다. 이번에 온 새엄마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아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또다시 떠날 거라고 예상되지 효령이가 다 자랄 때까지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런 집이 분명 있을 텐데 효령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잘 자라기를 기원한다.
예전에는 계모, 후처, 의붓어머니 등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인권 침해의 요소가 있는 말들이라 지금은 새엄마로만 쓰고 있다. 새엄마는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그럴 경우 설움과 고통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문제가 된다. 정인이법은 입양해서 데려온 아이를 학대해서 생겨난 법이다. 아동을 학대하고 살해한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인이의 경우는 8개월밖에 안 된 아기였는데 양부모의 끔찍한 학대로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해 집에 온 지 271일 만에 사망했다.
효령이는 다른 경우지만 이 세상에는 친부모든 양부모든 부모한테서 학대받는 경우가 정말 많다. ‘아동학대’가 2023년 한 해에만 2만 5,739건이 신고되었다. 청주복지재단의 조사에 의하면 학대 피해 아동 중 원 가정 보호로 결론이 난 경우가 2만 3,214건, 분리한 경우가 2,392건이었다. 부모로부터 자식을 분리하는 것으로 조치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 모두 아이들이 무병, 무탈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효령이가 새엄마를 사랑하고, 새엄마가 효령이를 잘 돌보기를 바란다. 아빠가 술을 끊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안학수 시인]
1954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보령에서 활동했다. 1993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동시집으로 『박하사탕 한 봉지』 『낙지네 개흙 잔치』 『부슬비 내리던 장날』 『아주 특별한 손님』 『안학수 동시선집』, 장편소설로 『하늘까지 75센티미터』, 『그림자를 벗는 꽃』이 있다. 『머구리에서 무거리로』 집필을 끝내고 출간을 기다리던 중 2024년 8월 3일에 작고했다. 동시 중 「꼽추 아저씨」가 있다. “등에 공 하나 넣고/ 가슴도 불룩한 아저씨/ 움츠린 원숭이 목에/ 아이처럼 쪼끄맣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자기 이야기다. 동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가슴 만져 보고 등 두드려도
바보처럼 그냥 웃더니
몇 살이냐고 다정히 묻는다.
선생님이
마음 좋은 사람을 조심하라 했다.
엄마는
친절한 사람이 위험하다 했다.
아이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일 거야.
아이를 꾀어 가는 못된 사람일 거야.
괴상한 생김이 정말 그런 것 같아
침을 뱉어 주고 재빨리 도망쳤다.
2003년 임영조 시인이 돌아가시자 보령에 시비 건립을 위해 오르내리면서 안학수 시인을 여러 차례 만났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